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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더반 시내에 나갔다. 동안 위험하다는 소리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 집 바로 앞, 슈퍼마켓에 갈 때조차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 한참을 망설인 후에나 나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제법 간이 부었나 보다. 동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 땅까지 와서 하루하루, 종일 방 안에만 쳐 박혀 있는 건 젊음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하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하여 홍길동이라고 불렸건만, 요 한 달 동안 홍길동은커녕 방바닥 귀신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전날 저녁 술집에서, 토니와 다른 친구들이 시내와 집 위치 약도까지 그려줘 가며, 시내로 나가는 방법과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비상시에 연락하라며 적어 받은 휴대 전화 번호만 해도 족히 열 장은 되는 듯싶었다. 그렇게 마음 써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샌드위치와 차를 들고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버스 시간은 기사 마음대로 라니 조급해 말고 기다리라는 친구들의 말에, 내 살 던 시골 고향은 하루에 버스 세 대 들어오던 동네였다고 대답하였다. 한국에 그런 곳이 어디 있냐며 안 믿는 눈치였다. 적어도 이 동넨 내 고향 동네보다 버스는 자주 오겠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부부로 보이는 백인들이 다가와 어디 가냐 묻는다. 더반 시내에 가는 길이라니 저 쪽 맞은편에서 타는 거란다. 하마터면 시내는 고사하고 생판 모르는 시골 땅에서 헤맬 뻔 했다. 버스가 왔다. 이미 버스 요금을 알고는 있었지만 버스 차장에게 말도 걸어볼 겸, 요금을 물었다. 이곳은 아직 몇몇 시내 버스에 예전 우리나라에 있던 버스 차장이 있어 요금을 받는다. 그들의 모습은 기억 속에 있는 과거 한국 버스 차장들의 그것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버스 출발을 알릴 때면 버스 옆면을 두어 번 탕탕 치고,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쯤이면 미리 문을 열고 버스에 잠시 매달려 있다가 솜씨 좋게 뛰어내려 손님을 맞이한다. 문득 교련복 찢어 만든 동전 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고향 동네의 버스 차장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를 반갑게 맞아준 이 차장 알고 있던 가격보다 약간 높게 버스비를 부른다. 잠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따져볼까 했지만, 몇 십원 차이 안나 그냥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버스는 대체 언제 적 것인지, 문도 제대로 닫히지도 않고, 의자며 창문이며 제대로 붙어있는 게 없다. 어떤 의자는 쿠션이 찢어져 그 안에 철사 쪼가리가 삐죽이 나와 있어, 주의하지 않고 앉았다간 십중팔구 저에 찔릴 듯이 보였다. 매캐한 자동차 기름 냄새와 기사 양반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섞여, 순간 구토가 쏠렸다. 게다가 버스 안에 있던 열 명 남짓한 승객들 중에 반 수 정도가 담배 물고서는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냄새가 좀 고약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흡연을 하는 지라 이는 마치 지상 천국처럼 보였다. 얼른 얼씨구나 하며 담배 한대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랬더니 버스 차장이 다가와 어디서 담배를 피냐고 시비다. 

 

“지금 나만 담배 펴요? 저기 저 사람들은 뭔데요?”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이 차장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자기도 담배 한대 주면 괜찮다 한다.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 한대 건네니, 이번에는 로또 종이를 들고 와 번호 다섯 개만 찍어 달란다. 왜 이런 부탁 하느냐 물으니, 동양인들은 행운을 가지고 다녀서 잘 맞을 것 같아 그런다고 그런다. 

 

‘동양인들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너희들 주술사에게 찾아가보지 그래?’

 

 아무 숫자가 대충 불러주고 바깥 풍경에 집중했다.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 역시 겉보기에 이 버스만큼이나 낡을 대로 낡아,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정신 없이 흔들어댔다. 

 

뭐니 뭐니 해도 버스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 뭐하노라 쳐다보면 참말로 재밌다. 매번 신기한, 색다른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과 똑같은 그 모양들은 나름대로 전에 보아왔던 모양들과 틀려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 하나가 자꾸 눈앞에 거슬린다. 차장이다. 이젠 아주 내 옆에 앉았다. 버스 요금 올려 받을 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치였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은 짓만 골라한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그렇잖아도 꼬불꼬불한 곱슬머리가 더 이상 엉킬레야 엉킬 수 없을 정도로 엉키고 뭉개져 있었다. 웃을 때마다 드러내는 앞니는 대문짝만큼이나 벌어졌고 거기에 담배를 얼마나 피워댔는지 치석으로 누렇게 덮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때 묻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요새말로 생긴 것부터가 재수 없었다. 요금 올려 받기에, 담배 가지고 시비더니 이젠 무얼 가지고 시비일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 물어올 말은 뻔하다. 어디서 왔느냐, 성룡이나 이소룡 아느냐. 당연히 저런 질문들이 왔고, 난 대충 성의 없게 대답하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제발 그만 좀 귀찮게 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으나 짧은 내 영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욕도 좀 배워야 한다 하던데, 역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 차장 제법 심각한 눈빛으로 에이즈(AIDS)에 대해 아느냐 묻는다. ‘예스’라 대답하자 이 친구는 한국의 에이즈에 대해 묻는다. 소수의 환자들만이 있어서 전혀 관심 없다고 대답하니, 이 친구가 노발대발하며 역정이다. 어떻게 그런 문제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며 말이다. 

 

 통계만으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의 20% 정도가 에이즈 또는 HIV 감염자라고 한다. TV 공익 광고에서는 끊임없이 에이즈 예방에 대해 나오고, 도시 곳곳에 에이즈 보건소가 세워져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에게 에이즈는 생활이다.

 

자세한 통계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핏 듣기에 한국에도 약 4000여 명의 에이즈 감염자가 있다고 한다. 이 수치가 에이즈 환자만인지 HIV 감염자도 포함한 것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주위 나라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이즈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인지, 한국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HIV와 에이즈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난 에이즈에 대해 무지했었다. 미국 전 프로농구 스타 매직 존슨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뉴스를 보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하며 의아해 왔다. 그는 에이즈가 아닌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관리만 잘하면 꽤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난 HIV와 에이즈에 무지하였다. 차장이 한국에는 에이즈가 없냐고 묻는다. 있다는 대답에 그들은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 대답할 말이 없다.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버스는 시내에 도착하였다. 그 시내버스 차장이 혹시 에이즈 환자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에이즈에 그리 무관심하냐며 역정을 내는 모습은 마치 안타까운 절규처럼 보였다. 국민의 20% 정도가 HIV 감염자 또는 에이즈 환자라니, 이미 만난 사람들 중에도 상당수는 그러할 것이다. 이 버스 차장도 어쩌면 그 20%의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에 에이즈에 관심 없다는 내 대답은 마치 자기 죽음에 전혀 관심 없다는 말처럼 들려 가슴 아팠고, 그래서 내게 노발대발하며 역정을 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가 에이즈 환자였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에이즈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픈 일이다. 아프리카 에이즈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 보다, 말로 듣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 생각해 보라. 통계에서 발표하는 숫자들일랑 일단은 잊고, 길을 가다 만나는 수많은 사람 다섯 중 하나는 HIV 보균자 또는 에이즈 환자라고 생각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길에서 만난 다섯 중 하나가 죽을병에 걸려 있다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한가.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측은하다. 이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해산물 시장을 둘러보며 지금껏 본적 없었던 생선들을 보다 슬펐다. 그들은 눈꺼풀이 없다. 그래서 죽었지만 눈을 덩그러니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노려보는 눈빛이 ‘나는 이미 죽었다. 그대가 내 죽음에 슬퍼해 주길 바란다.’하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이는 마치 그 시내버스 차장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눈만 떴을 뿐 자기는 이미 죽어있는 슬픈 이야기다.

 

 

 

 

 

처음으로 토니 집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 바깥에서 뭔가 계속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8시다. 어제 들은 바로는 지금 이 시간에 집안에 있을 사람이라곤 가정부 '에뜰'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문 앞에 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지금 바로 문 맞은편에서 들리고 있다. 이 문을 열면 오늘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요 며칠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넘치고, 넘치도록 만났건만, 이는 여전히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다. 흑인 친구라고 했으니 여기 말인 줄루어(Zulu)로 인사를 해볼까? 문을 열었다. 조그마한 키에 제법 통통한, 스무 살 이쪽저쪽으로 되어 보이는 처녀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다가 나를 본다. 

 

'사우보나!(Saubona)'

 

학교 다니며 줄루어를 배우긴 배웠다만 기억나는 거라곤 '안녕' 이라는 뜻의 '사우보나' 뿐이다. 에뜰은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고 라쉬르가 준비해 둔 아침을 내어 준다. 

 

가정부를 둔 다른 집들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에뜰은 온갖 집안일은 다 해도 요리는 하지 않는다. 빨래와 청소를 주업으로, 가끔 토니 부부의 막내딸 쉬리아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엔 미리 안주인이 준비해둔 샌드위치를 쉬리아에게 먹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보고 있는 사람으로는 여간 우스운 게 아니다. 어린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먹는, 맛도 없는 샌드위치를 안 먹으려 이리 저리 도망 다니고, 에뜰은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그 뒤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어쩌다 짜증난 에뜰이 큰 소리라도 내면, 쉬리아도 지지 않고 큰 소리로 안 먹겠다고 반항이다. 네 살짜리와 스무 살짜리의 전쟁은 항상 스무 살짜리의 승리로 끝이 난다. 쉬리아는 입을 앙 다물고, 양 볼에 잔뜩 바람을 넣어 부풀리며 까지 반항하지만 에뜰은 기어코 샌드위치를 쉬리아의 입에 넣고 만다. 에뜰은 참 부지런한 친구다. 나중에 집을 옮겨 지낼 때, 그 집에 있던 가정부와 비교하면서 그녀가 부지런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을 놀리며 집안을 돌아다닌다. 그런 에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열심히 비질도 걸레질도 하지만, 결국 내가 손 댄 곳은 에뜰이 다시 손질하고 다듬어야만 했다.   

 

그런 에뜰에게 남자친구가 있다. 토니가 빵 납품하러 다닐 때, 옆에서 돕는 조수, ‘시프리안’이라는 친구이다. 시프리안은 비쩍 말라 보이지만 팔뚝에 붙은 근육이며, 탄탄한 몸매가 남자다움을 물씬 풍긴다. 그렇게 멋지게 생겨서 인지 이 친구가 제법 바람둥이란다. 어찌나 바람둥이 인지, 이미 에뜰과 이 친구 사이에 애기가 둘이나 있는데도, 여기저기 다른 여자 만나는데 열을 올리더니, 급기야는 에뜰의 여동생과도 눈이 맞아 떡 하니 애까지 하나 생겨버렸다. 에뜰 입장에서는 기가 차고 환장할 노릇이다. 에뜰은 이 사실을 불과 며칠 전에 알았고, 그래서 둘 사이엔 찬바람만 쌩쌩하고 분다. 그런데 이 바람둥이 친구는 여전히 에뜰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연인에 대한 소유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와 에뜰이 방에 같이 있을 때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청소 도구가 내 방 침대 밑에 있는 까닭에 그녀는 끊임없이 내 방을 들랑날랑 해야만 했고, 그녀의 다림질 장소도 내 방이었다. 그녀가 방 청소를 하든, 청소 용구를 가지러 들락거리든, 다림질을 하든, 난 항상 내 할 일에 바빴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어 공부를 하거나 했다. 이렇게 방안에선 서로가 각자 일에 열심인데도, 시프리안 녀석은 마당을 쓰는 척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쓸데없이 나를 불러 내, 날씨가 좋으니 바깥에 나와 있으라는 둥 이야기한다. 사실 난 그녀가 내 방에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근처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 여자가 바람을 피자, 애인이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총으로 살해하였다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치안이 불안정한 남아공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난 며칠간 꼼짝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나라고 아주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나는 두 남녀 사이에 묘하게 끼어 있었다. 언제 시프리안이 달려들어 내게 총질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시프리안도 에뜰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방에 에뜰이 들어오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근처 산책을 하거나, 재미도 없는 텔레비전을 보러 거실로 나갔다. 시프리안이나 에뜰이나 다 착하고, 좋은 친구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만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총기 사건이 빠지는 날이 없었고, 바로 윗동네에서는 연인들의 삼각관계로 인해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그 좋은 친구들조차도 믿지 못하게 했다. 시프리안이 비록 가난하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권총 한 자루쯤은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원칙적으로는 총기 소유가 자유롭지 못 하다고 한다. 총기를 구입하려 할 때는 허가를 맡아야만 구입할 수 있으며, 그렇게 구입한 총기 보관도 법이 정한 법규대로 해야만 한다. 그러나 도처에는 불법 무기가 널려 있고, 만난 친구들 중에도 허가 받지 않은 총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중에 총들이 어디서 어떻게 공급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조직적인 갱스터들에 의해 공급된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총이 대여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5만원 정도면 하루 대여가 가능하단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시프리안이 어느 날, 나와 에뜰이 같은 방안에 있는 것이 보기 싫어, 날 죽이고 싶어진다면 밖에 나가 총 한 자루 대여하면 된다. 사정이 이래 놓으니 이래저래 시프리안과 에뜰을 보기가 갈수록 힘들어 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니는 혼자 집안에 있을 때는 시프리안이라 할지라도 현관문을 절대 열어주지 말라 한다. 시프리안 뿐만 아니라 에뜰을 제외한 어느 흑인이 오더라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 신신당부 했다. 대부분 가정 현관문은 항상 이중 삼중으로 잠겨 있다. 거기에 현관문 바깥쪽에 철창살 덧문이 하나 더 있어 이 덧문의 잠금 장치는 현관문보다 더 견고하다. 날이 더워 현관문을 열어 놓는다 해도, 바깥쪽 덧문은 꼭 잠가 놓는다. 바깥일을 주로 하는 시프리안은 토니나 집안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잠긴 덧문 밖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굳게 닫힌 문은 시프리안게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흑인들에게 특히 흑인 남자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토니의 말이 내게는 곧 법이었다. 시프리안을 포함한 모든 흑인은 그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시프리안과 함께 시내 구경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학교에 볼 일이 있는데, 나 혼자 보내기에는 토니가 많이 불안했나 보다. 그래서 그는 시프리안을 내게 안내원으로 붙여 주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버스를 한번 갈아 타야한다.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시프리안은 주로 자기 가족들과 사는 곳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물었다.

 

“너 에뜰을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보디가드가 알고 보니 의뢰인을 살해하고자 고용된 청부 살인업자였다는 어느 영화인지 책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지금 주위에는 날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니 날 보호해주라고 토니가 붙여준 이가 내게 가장 위험한 사람처럼 보였다. 시프리안이 나를 이상한 골목이나 타운쉽으로 유인해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저 질문에 숨이 덜컥 막힐 정도였다. 

 

“물론 좋은 친구지.”

 

“애인으로는 어때? 제법 괜찮은 여자야.”

 

“어이, 친구! 난 전혀 관심 없어. 난 한국인이 좋아.”

 

다행히 별일 없이 학교에 잘 다녀왔고, 녀석은 더 이상 이에 대해 별 이야기도 없었다. 이후로도 다른 집으로 옮기기 전까지 한 달여 간은 에뜰과 시프리안 사이에서 잔뜩 긴장한 채 보내야만 했다. 

 

가슴 아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현실이었다. 극도로 불안정한 치안은 이렇게 가까운 친구마저도 일단은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언제 뒤통수를 칠까 하는 염려 정도가 아니라, 언제 총칼을 들이밀고 내 생명을 위협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였다. 그들에게는 함부로 문도 열어주지 못 한다. 이는 흑인 인권을 위해 평생 몸바쳐온, 그래서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넬슨 만델라 (Nelson Rolihlahla Mandela)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아파르테이트(Aparthad) 시절에는 강력한 경찰력으로 인해 범죄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한다. 물론 그 강력한 경찰력이 흑인들을 짓밟는데 쓰이긴 했지만 덕분에 도둑이나 강도도 별로 없었다 한다. 그래서 옛날에 지어진 주택들은 대부분 담장이 낮다. 아파르테이트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은 알아보기 쉽다. 담장은 낮지만 그 위에 쇠창살이나 철조망을 억지로 높게 올린 집들은 대부분이 그 때 지어진 집들이다. 전에는 담장이 낮아도 괜찮았으나 시국이 불안정해 지니 급히 창살과 철조망을 올린 것이다. 높아진 담장과 철조망만큼 높아진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아닌가 한다. 시프리안은 내게 참 고마운 친구임에 틀림없다. 토니가 부탁하긴 했어도, 그는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오고, 말 한마디를 하여도 따뜻하게 하였다. 근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만 없었다면, 에뜰에 관한 시프리안의 이야기는 어쩌면 농담으로 흘릴만한 가벼운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행동 하나 하나에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어릴 때, 동네 개 한 마리가 내게 꼬리 흔들며 좋다고 따라오다가 갑자기 이빨을 들이밀고 덤벼들었던 경험이 있다. 으르렁대는 소리 하나 없이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안심하고 있었기에 더 놀랐다. 그 뒤로 개가 뒤에서 따라오면 일단은 불안하다. 자꾸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되도록이면 쫓아내려고 한다. 시프리안의 그 웃는 모습과 친근한 모습에서 어쩌면 난 그 개의 모습을 읽어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이, 순수한 호의와 친절로 대한 것이라면 난 그에게 무척 미안하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남아프리카 사회에서 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날 그렇게 떨게 했던 시프리안과 에뜰. 그 둘은 결국 헤어졌고 둘 사이의 애들은 에뜰이 혼자 키우고 있다. 

 

 

 

 


 

 

 

 

사실 제가 여기 올리고 있는 이야기들은 나름 순서대로 쭉 정리가 된 이야기들입니다.

 

 

 

혹시 어디에 내 보일일이 있으면 순서대로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정리를 해 두었지요^^

 

 

 

그런데 이 곳 2africa에서 조차 딱딱하게 정리된 순서에 따라 올리려니 제가 쪼금 지겹네요.

 

 

 

그래서 내 맘대로, 저 뒤쪽에 있는 이야기를 갖다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순서 맘대로 재미있게 올려드리지요.

 

 

 

혹시, 중복된 내용이 나온다면ㅋㅋㅋ

 

 

 

쪼콩이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올리다가 실수했구나 생각하며 씹어 주시고, 욕해주세용~~^^

 

드디어 토니의 큰 아들 리납이 퇴원했다. 무릎 수술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아무 문제없다 한다. 기분이 좋아진 토니는 저녁 때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외식을 나갔다. 같이 가자는 말에 가족들끼리 맛있게 먹고 오라 대답했건만, 토니는 한사코 차에 태워 끌고 나갔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가족 식사에 동참했다.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 갔다. 메뉴판을 보고 우물쭈물 하고 있던 나를 위해 라쉬르가 달걀 요리로 주문을 대신 해 주었다. 이제 좀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암만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 메뉴판은 아직도 골칫거리다. 그래서 지금도 식당에 갈 때면 같이 간 친구에게 주문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매번 똑같은 음식만 주문한다.

 

리납이 지겨웠던 병원 생활에 대해 한창 불평하고 있을 즈음, 웨이터가 작은 유리 대접에 레몬을 띄운 깨끗한 물을 가지고 와 각자의 앞에 놓아준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차라 얼른 대접을 들어 마셨다. 물맛은 별로였다. 날은 더운데 물은 미지근했고, 거기에 레몬까지 띄워놓아, 싱거운 레몬 향과 맛이 오히려 물맛을 버리는 듯싶었다. 

 

‘시원한 물은 그만두고라도, 레몬을 띄우긴 왜 띄워? 물맛 버리게.’

 

겨우 반도 못 마시고 물 대접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다. 날 보는 토니의 눈이 왠지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둘째 아들 리반은 아주 배를 잡고 뒹굴며 웃는다. 웨이터도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토니가 얼른 웨이터에게 얼음물 한잔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핑거볼(finger bowl)이라는 손 씻으라 내준 물이다. 손 씻으라고 내 준 물을 마셨다. 이렇게 창피할 수가. 예전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핑거볼을 들이킨 한국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 쥐며 깔깔댔던 생각이 났다. 어떻게 마실 물인지 손 씻을 물인지 하나 구별 못 하냐 비웃으며 말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핑거볼은 손 씻는 물이라 생각하기 힘들게 생겼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 대접에 레몬까지 떠 있어, 이건 보기에도 시원하고 참 맛나게 생긴 물이다. 평소 식당에 들어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 성의가 고마워서 한잔 들이키지 않고는 못 견디게 생겨 먹었으니, 어찌 아니 마시지 않고 배겨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나중에 나온 얼음물이 훨씬 볼품없고,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괜히 유리 대접과 레몬을 탓 하며, ‘한국 식당에서는 식사가 나오기 전에 항상 마실 물을 가져다 준다, 난 그래서 착각을 했다.’변명을 해 댔지만 이미 친구들의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토니가 덕분에 아주 즐겁게 식사 했다며 고맙단다.

 

 

 


 

 

 

 

<쪼콩>

 

오늘은 영 기분 거시기 하신 분들 웃으라고 적어 봤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경험해보신 분들 계실지도ㅋㅋㅋ

 

부족과 민족

 

 

글머리에 앞서, 이 글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 글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인류학에 있어서 ‘낫 놓고 이게 기역인가?’ 하는 주제에 이제부터 사회 진화네 뭐네 하는 소리들을 지껄일 것이다. 다른 학자들의 글을 충분히 읽고, 더 충분히 공부하고 이 글을 쓴다면 더 좋겠지만, 급한 성질 탓에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일단은 지껄이고 본다. 

 

‘아’다르고 ‘어’다르다. 당연하다. 그런 맥락에서 부족과 민족은 같은 듯 참 다르다. 

 

 

 

부족(部族): [명사] 같은 조상·언어·종교 등을 가진, 원시 사회나 미개 사회의 구성단위가 되는 지역적 생활 공동체.

 

 민족(民族): [명사]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아프리카에 있어서 부족이라는 단어는 차라리 생기지 말았어야 할 단어이다. 아프리카 부족과 아프리카 민족, 이 두 단어 중 나조차도 아프리카 민족보다는 아프리카 부족이 듣기 더 친숙하다. 아프리카 민족이라는 단어 보다는 아프리카 부족이라는 단어를 사는 동안 훨씬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인류학의 선구자라는 멍청이들이 아프리카에 갖다 붙인 단어 ‘부족’으로 인해, 우리는 아직까지 아프리카를 미개한 대륙으로 먼저 판단하고 사고를 진행한다. 부족이라는 단어는 그 느낌만으로도, 그들은 벌거벗거나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창 들고 활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며 짐승들을 쫓아다닌다. 코끼리에게 독화살 한 대 박아놓고 코끼리가 쓰러질 때까지 무식하게 쫓아다닌다. 이는 단순히 우리와 다르다는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다. 이는 웃기는 것이다. 

 

위에 사전에서 인용한 ‘부족’이란 단어에는 분명히 ‘미개 사회의 구성단위’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부족은 미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미개하기에 부족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족이라 부르기에 그들이 미개한 것이다. 사실은 미개하지 않다. 그렇지만 미개하다. 사회 진화론에서 떠들어 대던 사회의 진화는 유럽의 선진 문명이라는 이름 좋은 껍데기를 핑계로 유럽 외 사회를 미개하고 미천한 부족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유럽 부족’이라는 말은 어떤가? 게르만 부족, 앵글로 색슨 부족이라는 말은 어떠한가?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부족보다는 민족이 훨씬 어울린다. 그래서 그들은 미개하지 않은가 보다. 웃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이라는 표현이다. 

 

 

 

 역사 [歷史]: [명사]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유럽 부족은 과거 화려한 그리스, 로마 문화를 토대로 문화, 종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 많은 분야에서가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이다- 세계를 이끌어 왔다. 그들은 역사를 토대로 형성된 집단이다. 역사를 통해 정당하고 검증된 사회 변화를 겪어 왔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은 인류의 정도(正道)이며, 그렇기에 인류 사회는 유럽 사회의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 

 

반면 부족에는 역사가 없다. 그저 같은 조상, 같은 언어, 종교 등을 가진 원시 사회나 미개 사회의 구성단위가 되는 지역적 공동체일 뿐이다.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이라는데 비하면 이는 엄청난 차이이다. 말대로라면 부족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가 없기에 그들에게는 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정치, 문화, 경제 등 인간 집단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한발 더 나가보면 부족이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역사를 빼앗아, 그들의 시간마저도 앗아가 버린다. 시간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변화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까지 옷을 입을 줄도 모르며, 창과 활로 짐승 사냥에 정신이 없다. 역사는 곧 시간이며, 역사가 없다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그들의 시간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인간은 이제 우주를 들락날락 하는데도, 유독 아프리카인들 만은 아직도 너른 산과 들을 알몸으로 뛰어다닌다. 

 

왜 우리는 그들에게서 역사와 시간을 빼앗아 버렸는가? 이는 앞서 말한 잘난 인류학자들 덕택이다. 그들은 자기와 다른 모습을 우습게 치부해버렸다. 물론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 어쩌면 그들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아프리카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애 썼을 것이다. 물론 우습게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미 ‘인류는 진화한다’라는 생각에 젖어있었고, 그 진화의 정점 유럽을 향해 아프리카는 달려가고 있다 판단했다. 말 많은 생명 진화론 계보를 보면 인간은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해 진화의 꼭대기에 서있다.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한 다른 생명들은 그들 나름대로 훌륭한 삶의 방식을 찾아냈고, 그에 맞게 진화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지구상에 살아남은 생명들은 모두 진화의 정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만이 그 정점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 상당수는 조사 대상을 인간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사회 연구도 이와 비슷하다. 생명 진화와 비교하자면 유럽은 인간이고, 다른 민족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생물이다. 그래서 그들 인간 집단을 표현하는 단어도 민족이 아닌 부족이다. 이미 인간의 눈에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조차도 그저 우스운 존재이다. 유럽에게 아프리카는 그저 맹수였다. 과거 유럽이 아프리카를 침범할 당시, 총과 대포 앞에 창과 칼로 할퀴며 달라 드는 그저 성난 맹수일 뿐이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보며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그 중간 단계라고 까지 생각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을 잡아다가 박물관에다 전시를 해 놓기도 했다.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인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흑인 노예들은 유럽인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도 없었을 것이었다. 소에게 밭일 시키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는 역사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용납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의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도, 서사하라를 지배하던 송가이(Songhai)도, 짐바브웨에 세워진 돌 성도 유럽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짐바브웨의 돌 성, ‘그릿 짐바브웨 (Great Zimbabwe)’ 를 솔로몬 왕이 보물을 숨겨놓은 성이라고 한 일은 웃기려 작정을 해도 아주 단단히 작정한, 웃기지도 않는 사건이었다. 유럽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아프리카인들의 집합을 부족이라고 불렀다. 민족이라 부르기에는 뭔가 덜 떨어진 단체였다. 생물 진화 학자들이 다른 생물을 인간에 비교하여 설명하듯, 유럽 인류학자들은 다른 민족을 유럽에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그들도 알지 못하게 자리한 유럽 우월주의를 머릿속에 담은 채 말이다. 그 우월주의는 인류학자들이 유럽과 아프리카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자기네도 모르게 아프리카를 열등한 모습으로 그렸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각자 나름 진화의 최상위에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 역시 사회 진화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거나, 잊었다. 그나마 사회 진화 라는 게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이 상황은 이제 더 심해진다. 아마 그들은 어디서 ‘아프리카인들은 옷도 안 입고 벌거벗은 채 다니며, 무슨 짐승 소리인지 인간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소리로 띠까띠까 거리며 다니더라.’ 라는 소리를 이미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덜 인간된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하였으리라. 이제 독자들이 상상했던 그들의 모습은 ‘지식의 보고요, 세상의 거울’ 이라는 책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해준다. 독자들은 상상했던 그들의 모습을 책을 통해 다시 확신한다. 하지만 이 때 독자들은 그들을 ‘우리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덜 떨어진 사람들’ 이라 판단했다. 독자들은 인류학자들과는 달랐다. 인류학자들은 알량한 체면 때문에라도 아프리카인들을 대놓고 웃지는 못했지만, 독자들은 맘껏 비웃어도 된다. 자기들과 다른 삶의 방식은 우습고,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도 독자들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 따스한 햇살아래, 고풍스런 양산에, 꽃과 깃털이 달린 모자를 살짝 삐딱이 쓴, 그리고 촌스럽게 펑퍼짐하니 퍼진 치마를 입은 어느 숙녀 분께서는 벗고 거리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에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 가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교양 있게 ‘호호’ 웃으며, 저 쪽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식해서 옷도 안 입고 산다며 수다를 떨었겠지. 웃을 때 눈가에 지는 그 주름에는 무식한 것들에 대한 업신여김과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한 경멸을 가득 담았을 것이다. 인간 같게 살지 못 하는 그 들을 어여삐 여긴 어떤 이들은 이제 그들을 ‘구원’ 하러 아프리카로 향한다. 선교사들은 벌거벗은 것은 야만적이라며 그들에게 옷을 가져다 준다. 그들이 벌거벗은 것은 ‘그들에게 옷이 없기 때문’ 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서아프리카 어떤 마을에서는 선교사들이 나눠 준 옷으로 병을 얻어 마을 주민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그 곳에는 옷에 붙어, 병을 옮기는 작은 해충들이 득실거렸고 이를 모르던 선교사가 주민들에게 강제로 옷을 입혔다가 벌어진 비극이었다. 

 

과거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지금도 유럽이 저러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저러고 있다. 과거 유럽 유럽이 아프리카를 깔보며 우습게 보던 모습들은 현재 우리 일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를 보면, 일단 거기는 동물의 왕국이다. 인간들은 없다. 오로지 동물들만이 서로 먹고 먹히며, 생존에 여념이 없다. 그나마 몇 개 없는 인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괴성을 질러대며 껑충껑충 뛰며 춤 같지도 않은 춤을 춤이라 우기는 사람들과 사자 사냥, 그리고 염소 피를 서로 나눠 마시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벗고 있거나 천 몇 쪼가리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다. 아프리카가 왜 발전되지 못 했냐는 질문에 어떤 똑똑하신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프리카는 원래 기후가 먹고 살기에 좋아서, 그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급자족을 통해 해결됐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게을러지게 되었고, 그 생활 습관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아프리카는 현재도 옛날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서 발전이 안 됐다.”

 

그에게 아프리카가 유럽에게 당한 착취를 암만 이야기 해 준다 해도, 그가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게 발전하지 못한 아프리카는 순전히 아프리카의 기후와 선천적으로 게으른 그네들 탓일 뿐이다.

 

언젠가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아프리카 음악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어느 행사에 참여하여, 아프리카 음악을 선보일 일이 있었다. 행사는 세계 각국의 음악, 춤 등을 소개 하는 행사로 세계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주최 측은 무대에 올릴 팀을 선별하기 위해 오디션을 열었고, 아프리카 음악 팀은 오디션부터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 케냐에서 직접 공수한 케냐 전통 의상을 입었다. 이날 아프리카 음악 팀에게 한 오디션 담당자의 말은 우리가 아프리카를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다 좋은데, 의상이 좀 걸립니다. ‘아프리카면 아프리카답게’짐승 가죽 무늬 뭐 그런 거 입어야 하지 않나요?”

 

오디션 담당자에게 아프리카다운 아프리카는 짐승 가죽을 입은 아프리카였다. 그 곳에서 직접 가져온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무늬들은 그의 상식에 어긋나는 아프리카였다. 그래서 진짜 아프리카 전통 옷을 보며, 아프리카답지 못한 의상이라 한다. 결국 그 팀은 불행히도 표범 무늬가 그려진 천을 동대문에서 구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진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두고도, 사람들에 맞는 아프리카를 만들어내기 위해, 표범 무늬 천을 동대문에서 구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 팀이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아프리카를 연출하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아프리카를 연출했듯이, 다큐멘터리 관계자들 역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아프리카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짐승들을 찍어대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프리카 민족이어야 한다. 그들에게도 분명히 역사가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고,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아프리카 땅이 유럽의 지배하에 있던 시절,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하면 믿겠는가? 우리가 과거 일본에 저항했던 것처럼, 그들도 똑같이 싸웠다. 오히려 일본 침략 시, 우리가 그대로 나라를 갖다 바친 꼴로 빼앗긴데 반해, 적어도 그들은 창, 칼을 들고 유럽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라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해 싸우다 죽은 우리 청년들처럼, 아파르테이트 정권에 대항하다 죽어간 수많은 청년들이 있었다. 우리가 민주 투사라며 그 죽어간 청년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듯이 그들 역시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려 죽어간 청년들에 똑같이 안타까워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회를 가지고 있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다. 전혀 우습지도, 덜 떨어지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아프리카에는 동물들만 득실거리고, 거기 사람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사회 진화는 없다. ‘변화’ 라는 단어를 쓴다면, 그리고 그 변화를 ‘역사’로 표현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 끄덕할 것이다. 아직도 사회는 진화하고 발전 한다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궁금하다.

 

‘발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인류는 발전했는가? 무엇을 보고 발전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고고학계에서 이야기하고, 중 고교 역사시간에 배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원인이 최초의 인류라면, 우리는 분명히 이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프리카의 시간은 세계 어느 대륙보다도 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냥감에 독침 하나 꽂아 두고, 쓰러질 때까지 쫓아다니는 모습이 과연 우스운가? 그들은 그런 사냥 방법 덕에 무식하게 사냥감과 피를 흘리며 싸울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아마 그 한 번의 사냥으로 적어도 몇 날 며칠은 포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습게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 그들 나름의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네는 남들이 개고기 먹는다며 한마디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라 들면서, 왜 남의 문화에는 저질이네, 야만적이네 하며 시비란 말인가? 혹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발전이라는 개념은 서구 사회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서구 사회와 같은 모습에 가까울수록 그 사회는 발전하였다 평가 받고, 그렇지 않으면 덜 발전하였다 평가 받는 것은 아닐까? 진화란 없다. 역사가 있다. 진화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변화라면 역사란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에는 부족이 없다. 거기에도 똑같이 민족이 있다.

 

어린 학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다. 지구의 꼭대기가 어디냐 물으면 ‘북극이요.’참 귀엽게도 대답한다. 난 그들에게 지도를 한 번만 뒤집어 보라고 이야기 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지도를 뒤집어 놓고 다시 물으면 이제는 대답이 둘 중 하나로 바뀐다. 북극과 남극. 지도를 옆으로 돌려놓으면 북극과 돌려놓은 지도에서 위에 있는 부분이라 대답한다. 희한하게 아무리 지도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돌려놓아도 ‘북극’이라는 대답은 꼭 나온다. 어디서 듣기에 지도 상 북반구가 남반구 위쪽을 차지하게 된 것은 유럽 열강들이 북반구에 있기 때문이라 한다. 사실 남극을 위에 그려 넣은 지도는 여태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유럽이 참 대단하긴 대단하다. 이 어린 친구들 머릿속에 까지 자기네가 위에 있다고 집어넣은 걸 보면 말이다. 지구본을 틀에서 떼어내 몇 바퀴 휘휘 돌린 후 어린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지구의 꼭대기는 북극이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지구라는 별은 위가 없는데 말이다.

 

난 지금 그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자기네가 생각하는 위는 ‘북쪽’이 아니라 ‘유럽이 있는 북쪽’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나이가 되길 기다릴 수밖에.

 

 


 

 

<쪼콩>

 

오늘은 남아공 이야기가 아니라 '쪼콩 칼럼' 입니다^^

 

아프리카를 판단하는 우리의 생각을 반성해보자 하는 의미에서 적어보았습니다^^

 

여기 2africa에 사회 진화론자는 없으시겠죠?^^

 

혹시 인류학자는 없으시죠?

 

너무 씹어놨더니 혹시 회원중에 계실까 겁나네ㅋㅋㅋ

 

혹시 계시다면, 님은 위 이야기에 해당 안돼요..ㅋㅋ(인기관리 하냐?--;;)

 

그럼 내일 또뵈요^^

 

아무 준비도 없이, 아무 아는 이도 없이 그저 전화번호 달랑 하나 들고 몇 년이나 머물 생각으로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다. 그런데도 아무 준비도 없이, 아무 아는 이도 없는 외국 땅에 가고 말았다. 타고난 낙천적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어, 그냥 아무 준비 없이 가도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달랑 하나 들고 온 전화번호의 주인공, 토니(Tony)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까무잡잡한 피부. 인도인이다.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동안 지도해주시던 교수님 친구, 토니는 털털하게 웃으며 자기 차에 이방인을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그렇잖아도 배가 주려 있던 참에 그가 직접 요리해 내준 음식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목구멍으로 넘겼다. 목구멍을 넘어 들어가는 음식은 주린 자에겐 더 없는 행복이리라. 

 

토니는 겨우 마흔 이쪽저쪽으로 보이는데 벌써 큰아들이 대학교 1학년이란다. 그리고 그 큰 아들 리납(Rinaav)은 바로 전날 축구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한다. 토니는 나 편히 쉴 방 하나 내주려고 녀석 다리가 부러졌나 보다 라며 웃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무릎 부위를 다쳐서 그리 웃으면서 이야기할 만한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다. 것도 모르고 불쑥 찾아와 미안했다. 사정이야 어쨌든 당분간 먹고 잘 곳이 생겨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쉬라며 안내해준 큰아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우며, 오랜만에야 제대로 된 잠자리에 눕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잔 하룻밤을 빼고는 전부 침대에서 누워 잤는데도 말이다. 

 

토니의 가족은 토니, 부인 라쉬르(Rashree), 대학 1학년인 큰 아들 리납(Rinaav), 고등학교 다니는 둘째 아들 리반(Rivaan), 그리고 여섯 살 난 막내딸 쉬리아(Shiria)까지 모두 다섯이다. 토니는 공장에서 빵을 가져다가 근방의 대학 기숙사와 작은 점포들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부인은 사회 복지사 일을 하며 동시에 학교에서는 석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다. 그들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5시에 토니는 공장으로, 6시엔 라쉬르가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일터로 각각 나선다. 둘째 아들 리반이 조금 늦게 학교로 나간다고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일찍 일어난다고 해도 녀석이 학교 가는 걸 본적이 없으니 적어도 7시 반 이전에는 나가나 보다. 그리고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토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온갖 잡다한 집안일을 다 한다. 요리도 하고 아이들 데리러 학교에도 가고 한다. 토니처럼만 가사를 돕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아내에게 있어, 더 없이 좋은 남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병원에 있는 아들에게 퇴원하기 전날까지 매일 문병도 갔다. 그리고 내가 온 이후로 새로운 일거리로, 내가 머물 집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가고 싶어 하던 학교에 데려가 구경도 시켜주었다. 토니는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식사와 잠자리는 물론이고, 비자 연장 문제, 학교 입학 문제, 심지어는 기분까지도 세세하게 신경 써주어 가끔 바다도, 술집도 데려다 주고 했다. 며칠 지나자 난 거의 가족이 된 분위기였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집안 청소도 도와야 했고, 설거지에다가 때로는 차 대접까지, 이 집안 식구들이 해야 할 일은 나도 다 하게 되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대며 손님 대접만 받느니, 약간의 수고로 가족 대접 받는 게 훨씬 마음도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을 돕는다고는 해도, 공짜로 먹고 잔다는 것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히려 토니에게 부담이 되었나 보다. 어느 날, 우연히 이 친구가 방안에서 둘째 아들에게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집안에 Song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그에게 무엇이든 부탁해라. 그래야 그 친구도 우리에게 덜 미안해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며칠 후, 새벽 네 시나 되었을 무렵, 토니가 흔들어 깨운다. 빵 납품할 때 옆에서 도와주던 조수가 아버지 부친상으로 며칠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며 도와달란다. 대충 얼굴에 물만 묻히고 토니를 따라 나섰다. 공장에 도착한 것이 아침 다섯 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빵 공장은 부산했다. 토니가 공장장이라는 귀여운 인도인 여자를 소개했다. 나이를 묻진 않았지만 어려 보였다. 길에서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겨우 고등학생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공장직원들에게 뭔가 지시하는 목소리는 야무졌다. 서류를 검토하고, 빵 기계를 점검하는 모습은 당당했다. 토니에게서 토니 조수 사정을 들은 후, 그녀는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토니는 가져가야 할 빵들을 확인하고, 내게 차에 실어달라며 부탁했다. 실어야 할 빵 상자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마에 어느 정도 땀을 맺히게 하기엔 충분했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 맺어가며 조수는 열심히 빵을 차에 실고 있건만, 토니는 제 직장 동료들과 껄껄 웃어가며 수다 떨기에 정신이 없다. 한국인을 이렇게 조수로 부리는 사람은 남아공에 자기밖에 없을 거라며 껄껄대는데, 약간 얄밉기까지 했다. 이렇게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 이랬던가? 공짜로 얻어먹고, 얻어 자고 하는 주제에, 일 조금 안도와 준다고 벌써부터 은인을 얄미워한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오늘은 충실한 조수가 되어 운전 외에는 토니가 할 일 없도록 해주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금 후, 토니는 파이 몇 개와 차 두 잔을 들고 왔다. 둘은 바닥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아까 공장장이 이쁘네, 어쩌네 하는 농담으로 낄낄댔다. 그렇게 며칠 동안 토니의 조수로 새벽에 일어나, 어여쁜 공장장을 보고, 더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이런 토니의 모습은 요새 말로 감동이다. 잘 아는 친구나 친지라도 자기 집에서 한 달 여간 공짜로 먹고 잔다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짜증 한번 낸 적이 없다. 그냥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가족으로 대한다. 부인이나 아들들에게 너무 오래 있어 미안하다 말 하니, 자주 있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며 신경 쓰지 말라 대답한다. 나뿐만 아니라 벌써 수십 명은 이렇게 들러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러 있다 돌아간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판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나를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다. 내일 당장 교통사고로 난 죽을 수도 있다. 그 때 넌 내 죽음을 슬퍼하며, 날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내 재산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날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부자이다. 너는 내 친구이고, 앞으로 나는 네가 날 깊이 생각해주고 내가 죽고 난 후 많이 슬퍼하고 날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렇게 대해주는 것이다. 적어도 내일 당장 내가 죽으면 넌 내 죽음에 슬퍼할 것이지 않느냐?”  

 

요즘 책들을 보면, 재테크다 뭐다 하며 부자 되는 방법들에 대해 아주 잘 나온다. 사실 나도 돈 한 푼 없이, 없는 살림에 아들래미 꿈 이뤄주겠다며 이렇게 유학까지 보내준 부모님 돈 타 쓰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고등학생 시절부터 골백번은 읽었는데도 이리 돈 욕심이 생기는걸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토니의 말이 떠오른다. 토니에게 삶의 재산이란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기억이라 했다. 학교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하면서, 아프리카 대부분 민족들이 다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오랫동안 기억되기 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인인 토니가 그런 민족들에게 영향을 받아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타 민족들은 끼어 들어가기 힘든 인도인 사회에서 토니가 다른 아프리카 전통 민족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기억을 재산 삼아 살아가고 있나 보다. 나 자신에게 한번 묻는다.

 

‘지금 당장 내가 죽으면 어느 누가 날 기억해줄까?’

 

얼핏 머릿속에 가족들과, 학창 시절 친했던 몇몇 친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게 다이다. 그나마도 그들이 날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해줄지도 잘 모르겠고, 좋은 기억으로 날 기억해줄지에 대해선 자신 없다. 동안 사고나 병으로 몇몇 젊은 친구들을 하늘로 보냈다. 꽤 친했던 녀석도 하나 병으로 세상을 떠나 보낸 적이 있다. 그 친구 이야기 좀 잠깐 하자면 참 바르고, 정도 많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친구를 보내면서도 몇 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무뎌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괜히 친구에게 미안해진다. 그 친구를 생각하노라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것도 것이지만,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파 지쳐 허여진 얼굴로 씩 웃으며,

 

“형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이지? 나 밥 한 끼 사주면서 좀 쉬어.”

 

참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웃었다. 

 

한번은 녀석이 내 기숙사 방에 와서는 그 좁은 침대에서 둘이 끼어 새우등으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밤새도록 콜록콜록거리며 힘들어 하는 녀석에게 미안했다. 불쑥 와서 잠 얻어 자는 주제에 자꾸 콜록거려 주인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차라리 녀석이 대 놓고 털썩 누워 나 몰라라 하고 줄창 기침 해댔다면 덜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주인이 자기 기침에 신경이라도 쓸까봐 아주 죽을힘을 다해 참고, 참다가 기침을 터트린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다음 날 아침에 지저분한 녀석의 구두를 닦아 주었다.

 

그 친구를 기억할 때면 난 아직도 웃는다. 아직 다른 사람들 보기엔 어리디 어리고, 세상 얼마 살아 보도 못한 풋내기이지만, 그 친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 있어 참 행운이었다. 그래서 웃는 그 친구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어쩌다 할 일 없는 날, 신발을 빨 때면 녀석 구두를 닦아주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토니 말대로라면 이 친구는 적어도 재산 하나는 남겨 두었다. 아니 이 친구의 많은 재산 중에 ‘내 기억’도 같이 끼어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전제를 가끔 잊고 살아가지 않나 싶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죽는다는 그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잊고 살아간다. 토니는 자기 죽고 나서를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재산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래서 생면부지 외국인도 제 집에 한 달이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런 손님 대접으로도 모자라 아주 가족 대접까지 한다. 

 

토니 친구 중 제리(Jerry) 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토니와 비슷한 연배로 큰 아들이 대학 3학년이라 한다. 그 친구가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하여 빚 저당으로 잡힌 집이 하루아침에 은행 손에 넘어가게 될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한다. 토니는 그런 제리를 위해 수천만원 돈을 은행에서 빌려, 대신 빚을 갚아 주었다 한다. 토니는 이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기억되기 위해 그랬다 이야기했다.

 

 

 

 

 


 

 

 

 

 

 

쪼콩의 남아공 이야기 세번째 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연재가 이십 몇일 후면 끝나겠는데요.ㅋㅋ

 

 

걍 후딱 다 해 뻐리고 놀죠 뭐^^

 

 

모기 누님 이제 좀 보기 편해졌죠?ㅋㅋ

 

 

제가 뭐 컴터 아는게 없어서...

 

 

그나마 이 정도까지 만드는데 이 것도 저것도 다 해봤습니다용~~♡

 
?

맨발 소녀 케이프타운을 조금 벗어나자마자 기대하던 아프리카의 모습이 펼쳐졌다. 군대 있을 때 휴전선 근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넓은 초원과 얕으만한 언덕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얕은 언덕 꼭대기엔 조그만 마을들이 듬성듬성 모여 있었다. 저 곳에는 누가 살까? 저 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 햇살이 따뜻하니 좋았다.

 

케이프타운에서 더반까지 버스표에는 28시간 정도 걸릴 거라 적혀 있긴 하지만 듣기로는 30시간은 족히 걸릴 거란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온 시간보다도 10시간이나 길다. 이 긴 시간 동안 무얼 해야 하는지 걱정이 잠깐 들었으나, 곧 버스 승객들과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내 양쪽에, 각각 배우 지망생과 레즈비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두 남아공 친구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뭐라 뭐라 따불따불 한다. 무언가 열심히 드시는 흑인 아주머니, 저쪽 버스 뒤 칸에 앉아 누가 볼세라 몸을 홱 돌리고 아기 젖을 물리고 있는 새댁, 지루한 표정으로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아가씨. 뭐가 불만인지 울며불며 칭얼대는 대여섯 살짜리 꼬맹이들, 원래 서로 알고 지냈는지, 아니면 이 버스에서 처음 만난 이들인지는 몰라도 두 아주머니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 열심히 수다 질이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TV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곰만큼이나 덩치 좋은 아주머니들이 제 덩치만한 짐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손에는 꼬맹이들 달고서 버스로 돌진하는 모습은 아마 당분간은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버스에서 난생 처음 하룻밤을 꼬박 보냈다. 레즈비언 친구는 중간에 내렸고 그 자리는 아침까지 비어 있었다.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였다. 햇살이 따가워 눈을 떠, 몇 시냐 옆에 물으니 겨우 아침 7시란다. 벌써부터 해가 참 따갑다. 대충 눈곱 떼고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선다. 화장실도 갈 겸, 아침 먹을 거리도 좀 사러 버스에서 내렸다. 허기가 져 죽을 지경이다.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자리하고 샌드위치와 콜라 한잔으로 아침을 들었다. 눈으로 멀리 초원들을 훑다가 금방 지겨워져 사람들로 눈을 돌렸다. 열심히 짐을 버스에 올려놓는 흑인 아저씨, 열심히 또 짐을 버스에서 내려놓는 흑인 아주머니, 아까 버스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새댁은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애 한입, 자기 한입 하며 아침 식사 중이다. 그리고 새로운 승객들. 거의 모든 휴게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가 하나 저기 있다. 소녀였다. 긴 금발 머리를 뒤로 묶어, 한 갈래 아래로 따놓은, 눈이 마치 푸른 보석 같이 반짝이는, 콧날은 또 너무 오똑해 인형의 것이라 해도 그만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소녀가,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아름다운 백인 소녀가 하나 버스에 오르고 있다. 그녀는 버스에 올라 가방이 무거운지 낑낑대며 천천히 버스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빈자리를 찾아 걷는다. 얼른 먹던 샌드위치를 한입에 털어 넣고, 콜라를 잔뜩 들이켜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재빨리 버스로 올라 그녀의 뒤에 서, 친절하게 '도와 드릴까요?' 말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네. 부탁 드려요.' 대답한다. 그녀의 가방을 받아 들고 내 옆자리로 안내했다. 새벽까지 레즈비언 친구가 앉아 있던 그 자리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여느 승객과 달랐다. 지금 까지라면 그녀 역시 여느 승객들처럼 이 누런 피부의 황인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디서 왔냐, 이름은 무엇이고 하는 등등 여러 가지 정신 없이 물어 봐야겠지만, 그녀는 그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녀가 조금은 서운했다. 나도 그녀의 눈을 쫓아 그녀가 보는 곳을 따라 보았다. 어제 내내 그리고 밤새 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전혀 다를 바 없이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자고, 지루해 하고 있다. 버스가 이미 출발했는데도 여전히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 눈은 누군가를 찾는 다기 보다는 그저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외국인일까?' 어떻게 말을 걸어 인사를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소녀가 알지 못 하게 곁눈으로 슬쩍 슬쩍 그녀를 보았다. 마치 예쁜 자기 짝꿍을 수업 중에 곁눈으로 힐끔힐끔 바라보는 초등학생처럼이나, 창 밖 한번, 소녀 한번 하면서, 설사 눈치라도 챌라 조심스럽게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원피스 치마가 땋아 내린 머리와 참 잘 어울렸다. 파란 눈과 금발은 뽀야니 깨끗한 피부와 참 잘 어울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머리부터 보았다. 금발, 눈, 코, 하얀 원피스, 맨발.

 

'맨발?'

 

눈이 발에 이르자 의아해졌다. 틀림없이 맨발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는 쭉 맨발이었다. 휴게소에서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밟아 버스로 향했고, 맨발로 버스에 올랐고, 맨발로 자리까지 갔고, 맨발로 자리에 앉아 지금도 맨발로 자리에 앉아 있다. 혹시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정신이 좀 이상한건가?' 사실 우리나라에서 맨발로 버스에 오르는 여자를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이다. 설사 그런 여자가 있다면 대번에 정신 나간 여자라는 의심을 받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까지 생각이 이르자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조차도 안쓰러웠다.

 

'아! 저렇게 고운 소녀가, 어린 나이에 참 안됐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아리따운 백인 소녀를 향한, 동경 어리던 내 시선은 이제 동정의 시선이 되어 버렸다. 머릿속에선 온통 안됐다는 생각뿐이었다. 결론이 그렇게 나자, 이젠 이런 소녀를 혼자 버스에 태우는 남아프리카 사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쩜 부모가 없을 수도, 부모가 없다면 보호자는 어쩌자고 저렇게 혼자 버스에 태워 보내자는 것인지 하며 혼자 화를 냈다. 거기다가 저 무거운 짐까지 들려서 말이다. 소녀가 더 가여워 보였다. 처음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하던 고민은 어느 새 사라져 버리고, 앉아 혼자 씩씩거리며 머릿속으로 무섭게 화를 냈다. 옆에서 배우 지망생은 신문을 보며, 유명한 팝가수 에브릴라빈(Avril Lavigne)이 더반에서 공연을 한다고 시끄럽게 수선이다.

 

'이봐, 자네, 아무리 어리다지만 에브릴라빈 보다도 더 예쁜, 이 정신 지체 소녀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한단 말인가? 너희 남아공 사람들은 대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선 전혀 신경도 안 쓴다 이건가?'

 

이젠 옆에 앉아있던 애꿎은 배우 지망생에게도 화가 났다. 뚱한 표정으로 관심 없다고 대답하고 적어도 이 불쌍한 소녀가 버스에서 내리기 까지는 내가 지켜 주겠다고 혼자 다짐한다.

 

혼자 화도 내며, 다짐도 하는 사이 버스는 십분 정도 달린 듯싶었다. 그녀가 갑자기 발아래 내려놓았던 짐을 짐 선반에 올리겠다고 낑낑댄다. 다짐대로 얼른 일어나 짐을 얹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인이었다. 드디어 그녀가 내게 질문을 시작했다. 난 그녀가 행여 잘 못 알아듣기라도 할까봐 잘 되지 않는 영어였지만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녀 역시 외국인인 나를 위해 참으로 또박또박, 그리고 내가 잘 못 알아들을 때마다 더 쉬운 단어를 사용해 더 또박또박 세심하게 배려하며 이야기한다. 차라리 옆에 앉아 있는 배우 지망생 보다는 몇 배나 배려해주면서 말이다.

 

"저, 실례지만 왜 신을 벗고 계세요?"

 

"이상한가요?"

 

"예, 우리나라에서는 신을 벗고 거리를 걷지 않거든요."

 

"여기서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랍니다. 아마 여기 있는 동안 신을 벗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순간 웃음이 피식 났다. 차마 그녀에게 '난 당신이 미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우습게도 미안하게도 생각 들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아프리카 다큐멘터리를 보며 왜 저 치들은 보기 흉측하게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냐고 말씀하셨다. 그 때 난 할머니께

 

‘할머니께서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원래 저 친구들은 머리가 다 저래요.'

 

나 역시 그 잘 모르시던 할머니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주제에 말이다. 잘 몰라서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오해해 혼자 불쌍하게 여기고, 혼자 화내고, 혼자 지켜주겠노라 다짐하고 했던 참으로 바보 주제에 뭘 안다고 할머니께 원래 저 친구들은 저렇다고 설명을 했단 말인가? 뭘 안다고 아프리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혼자 신나 따따부따하고 잘 난 척 했단 말인가? 오만 방자했던 아프리카 연구생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 눈에 얼마나 자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느 누가 그 맨발의 소녀를 보고 제대로 정신이 있는 여자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오히려 지금까지 돌아다니는 동안 보아왔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친절했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를 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정신 나간 여자로 보게 했을까? 26년 여간 나를 키워낸 문화가 그랬던 것이다. ―아직 공부가 모자라 사회라고 해야 할지 문화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문화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문화라는 것을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내 머리는 자라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통해, 상식이라는 이름의 고정 관념으로 온통 채워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 말하는 문화 충격이란 다른 문화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받는 충격이 아니라, 다른 상식을 보며 자신의 상식이, 고정 관념이 깨질 때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차창 밖에 펼쳐진 넓은 대지를 보며 '과연 아프리카답다!' 라고 감탄 하던 모습조차도 부끄러워진다. 대체 아프리카다운 풍경이란 무엇인가? 동물의 세계에서 본 바로는, 넓고 넓은 사바나 그리고 듬성듬성 서 있는 못 생긴 나무들, 사자가 누우 떼를 덮치고, 치타가 영양을 쫓아 시속 100 Km로 달리고, 코끼리 떼가 지겨운 발걸음을 느릿느릿 옮기는, 그런 풍경이 아프리카다운 풍경이었다. 대학 시절, 언젠가 '아프리카 사회와 문화' 라는 수업의 첫 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작은 쪽지를 나눠주고 아프리카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만 적으라 했다. 기억으로는 그 때 태반 이상의 학생이 '야생 동물' 이라고 답했다. 이 정도로 아프리카는 야생 동물의 왕국이고 어딜 가도 사자, 치타, 영양 등의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땅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난 척 좀 한다고 그 쪽지에 근사하게 '성인식' 이라고 적었다. 이런 내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각 아프리카 부족은 - 비록 지금 나는 '아프리카 민족' 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때 내겐 '아프리카 부족'이었다 - 나름의 성인 의례를 위해, 돌로 만든 칼로 할례를 하고, 몸에 상처를 내며, 염소를 잡아 염소 피를 마시고 그 피를 몸에 바르고 사자를 사냥하러 가야만 했다. 버스 창, 바깥 풍경에는 사자도, 치타도, 코끼리도 없었다. 보이는 동물이라고는 가끔 농장에서 키우는 양, 소, 말, 타조가 다였다. 어디에도 몸에 화려한 무늬를 집어넣고, 귀나 입술에 주먹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은 사람을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보기 싫어하던 짧고 꼬불꼬불 엉킨 머리가 많긴 했지만, 길게 기른 친구들도 꽤 많이 보였다. 물론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해 오던 그런 아프리카의 모습들은 틀림없이 여기 어딘가 땅에 존재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들이 없는 걸 거짓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그 것이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 착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프리카는 동물과 원시 부족들과 식인종들이 우글대는 땅으로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다. 1주일 정도 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지나온 곳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 햇살은 따스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그나마 버스 에어컨 바람이 있어 살만하다. 버스 안의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맨발 소녀가 없어진 것만 빼고는 말이다.

 

그 곳에 있는 동안 내내, 나는 어디 나갈 때 마다 신발에 양말까지 다 신는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왔다.

 

 


 

<쪼콩>

두번째 이야기 '맨발소녀' 입니다^^

정말 이쁜 소녀였어요.

아직도 얼굴이 생각날 정도네요ㅋ(이글 우리 아내님이 보시면 난 죽었다. ㅋ)

내일 뵈요~~^^

?

레즈비언과 배우 지망생 그리고 덜 떨어진 황인

 

 

 

이제 목표했던 더반(Durban)으로 향한다. 케이프타운(Cape Town). 겨우 나흘 머물렀지만 고마우신 목사님의 도움으로 아주 편하게 머물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에 좋은 인상만 가지고 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배웅 나온 친구들과 목사님께 포옹으로 인사를 한다. '포옹' 긴 말 필요 없는 그리고 진정 정 깊은 인사가 아닌가? 차창 밖에 버스가 출발해 안보일 때까지 그들이 손 흔들고 있다. 누군가를 보내는 사람은 한 사람을 보내지만, 떠나는 사람은 모두를 보낸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언어에 대한 압박과 새로운, 전혀 알지 못 하는 또 다른 어느 곳으로 향한다는 두려움. 이제 약 30시간가량 버스에만 있어야 할 것이다.

 

옆자리에 이제 고등학교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흑인 친구가 하나 앉아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누런 피부의 황인 하나가 제 옆자리에 앉는다는 걸 신기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듯싶었다. 당장이라도 말을 건네고 싶었으련만, 그는 참을성 있게 아쉬운 작별의 순간을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하이(Hi)"

 

드디어 입이 떨어졌다.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앞으로 수백 번을 더 들을, 뻔한 질문들을 인사치레로 한다.

 

"어디서 왔어?"

 

한국.

 

"난 아무개야. 네 이름은?"

 

순간 당황하는 황인이었다. 영어 이름을 안 만들었던 것이었다. 송(Song)이라고 대답한다. 성(姓)이다. 그리고 더듬더듬 더반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 왔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 덜 떨어진 황인은 지금 제가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는지도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다.

 

"난 배우가 되려 해. 그래서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어. 그래서 나 더반에 가는 거야."

 

배우 지망생이라.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제법 잘 생겼다.

 

"비록 더반에는 아는 사람도, 잘 곳도, 그리고 돈도 없지만 난 꼭 성공할거야."

 

뭐? 그럼 가족들은?

 

"모두 케이프타운에 있어."

 

이런 황당한 친구가 다 있나. 이제 고등학교 2학년짜리가 배우가 되려고 집을 나와 잘 곳도, 아는 이도 없는 땅으로 돈도 없이 간단 말이야? 종종 아는 친구들 중에 배우를 또는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은 있었어도 이 친구처럼 무턱대고 상경하는 친구는 본적이 없다.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 버스가 선다. 간이 버스 정류소이다. 반도 안 차있던 버스가 그나마 반은 조금 넘게 찼다. 30대 중반쯤이나 되어 보이는 한 백인 여자가 웃으며 인사하고 옆자리에 앉는다.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창 쪽에서부터 흑인, 황인, 백인이 쪼로로 앉아 있다. 역시 그 여자에게도 이 황인은 관심 대상이었다. 한 시간 남짓 동안 벌써 열 번은 더 들었을 자기소개를 또 한다.

 

"난 지금 포트엘리자베스(Port Elzabeth)에 여자 친구(girl friend) 만나러 가는 길이야."

 

"여자 친구?"

 

여자가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어린 배우 지망생이 놀라 묻는다. 뭐 놀랄 일이라고, 여자가 여자 친구 만나러 간다는 게. 이 무지한 황인은 남자 친구(boy friend)와 여자 친구(girl friend)는 '애인'을 뜻한다는 걸 배운다.

 

"난 5년 전쯤에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여자 친구 만나고 있어. 난 레즈비언(lesbian)이야."

 

뭐 이런 친구들이 다 있는지. 자기가 레즈비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런 황당함이란. 옆에 있던 배우 지망생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이상한 이 셋은 몇 시간 동안 함께 했다. 버스가 중간 중간 휴게소에 설 때 마다 같이 내리고, 같이 먹거리를 사고, 같이 먹다가 같이 버스에 올랐다. 두 남아공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 영어 단어를 가르쳐 주고, 한국에 대해 묻고, 또 남아공에 대해 설명해 줬다. 특히 레즈비언 친구는 밤잠도 제쳐두었다. 중간 중간 버스가 설 때마다 누군가가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타고 했다. 새벽 1시나 되었을 쯤, 레즈비언이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이제 곧 내릴 거라고. 몇 시간이었지만 정 들어, 아쉽기만 했다. 악수와 포옹을 인사로 레즈비언 친구가 버스에서 내린다. 창 밖에 그녀의 여자 친구가 그녀를 껴안고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데……. 동성연애에 두 발 벗고 반대하던 이 황인은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잤을까? 햇살에 눈을 떴다. 시계도 가방 깊숙이 박아 넣어 둔지라 몇 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옆에 배우 지망생은 여전히 자느라 정신이 없다. 주위를 대충 둘러보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케이프타운에서 더반까지 버스로 가는 이들은 황인과 배우 지망생 둘 뿐인 듯싶었다. 하긴 대부분은 비행기로 가겠지. 이스트 런던(East London)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험악해 보이는 두 사람이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앞자리부터 차근차근 표 검사를 한다. 검표관이었다. 표를 꺼내 들고 그 두 사람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배우 지망생이 표를 좀 보여 달란다. 그에게 건네자마자 그는 세 장으로 되어 있던 표 중에 한 장을 찢어 제 호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두 장을 돌려주었다.

 

‘표를 잃어버렸나 보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지만 표를 다시 내놓으라고 야박하게 굴 수는 없다. 어차피 나머지 두 장이 있으니 별 문제야 없겠지. 마침내 검표관들이 왔다. 표를 받아 든 그들은 제들끼리 알 수 없는 말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버스 앞쪽으로 좀 와달란다. 그 한 장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나머지 한 장 어디 있냐 묻기에 잃어버렸다고 대답했다. 승객 명단을 펴더니 여권을 보여 달란다. 여권을 가져다 주자 이름을 승객 명단에서 확인하고 새로운 표 한 장을 즉석에서 끊어준다. 그리고 웃으며 이제 잃어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앞 쪽을 쳐다보던 배우 지망생은 일이 무사히 잘 진행되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배우 지망생 차례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얻은 표를 꺼내 검표관들에게 건넸다. 그런데 표를 보자마자 검표관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진다. 그들은 받아 든 표를 황인에게 보이며,

 

"네 표 여기 있다."

 

아차! 그 표에는 승객 이름이 떡 하니 써 있었던 것이었다. 검표관 중 하나가 배우 지망생에게 알 수 없는 남아프리카 말로 윽박지르자, 배우 지망생은 당황한 표정으로 열심히 변명을 하는 듯싶었다. 결국 그 역시 승객 명단 앞으로 끌려 나갔고, 잠시 후 그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버스에서 쫓겨났다. 그는 더반행이 아닌 중간쯤 되는 곳까지 버스표를 끊었고, 그래서 중간에 더반으로 가기 위해 표를 훔친 것으로 판명이 났던 것이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안녕이었다.

 

황인은 그렇게 처음으로 사귀었던 두 남아공 친구들을 보내었다.

 

 

 

 




 

<쪼콩>

 

오늘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처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하여 케이프타운에서 더반까지 버스로 향하는 길에 만난 친구들에 대해 적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요 케이프타운은 남아공 남서쪽 끝자락에 있구요, 더반은 동쪽에 있어요.

 

확인해 보셨나요? 히히 거리가 상당하죠?!^^ 버스로 30시간 조금 못되게 걸리더라구요.

 

더반은 KwaZulu Natal 지역에 있는 가장 크고 가장 상업화된 무역항구도시랍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수출입 항구라죠?!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그 항구가 보였는데 뭐 제가 무역에 대해 하는게 영 없어서인지 작아보이더라구요^^ 하지만 학교에서 내려다본 항구 경치는 아주 그냥 죽여줘요.ㅋ 맨날 점심밥 사들고 항구가 잘 보이는 잔디밭에 앉아 밥 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한국에 있어서 더반 하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권투선수 홍수환씨의 바로 그 경기가 있었던 장소로 많이 알려져 있죠. 아직도 어떤 분들에게 "더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어! 홍수환이 경기했던 곳 아냐?" 하더라구요.

 

 

 

이 이야기를 보시고 서로 많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보시고 어떠셨는지 댓글도 많이많이 달아주시공~ 댓글들 보면서 저는 수정, 정정, 고치기, 땜빵, 삭제, 훔쳐오기 등에 적극 참조하여 더 재미난 글들 쓰도록 할께요~

 

 

 

첫 이야기 이렇게 열었네요. 시작이 반이라죠?^^

 

그럼 내일 또 재미있는 이야기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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