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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찌기posted Feb 05, 2007

 

 

 

갑자기 눈이 떠 졌다. 꿈을 꿨나보다. 워낙 꿈을 잘 꾸는 편인데 여기서는 안꾸길래 좋아라 했다. 무슨 꿈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뭔가 쫓기는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늦게 일어났다. 비록 4일밖에 안됐지만 열심히 돌아나니는 바람에 피곤했나보다. 잠이 잘 깨지질 않았다. 오늘도 역시나 아침부터 덥다. 침대에서 여유부리다가 1시간을 그냥 보내버렸다. 아까워라~~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데 7시가 넘으면 전기가 끊기던 호텔에 전등이 다 켜 있는거다. 물어봤더니 일요일에는 종일 전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부만 알겠지.  머~ 암튼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아침을 먹었다. 목이 타서 음료만 계속 먹은 거 같다. 이렇게 마냥 먹다가는 살이 디룩디룩 찔거 같다. 오늘부터 소식을 하리라. 

과일 중심으로 식사를 마치고 어김없이 숙소 정리를 했다. 깔끔떠는 게 아니라 방을 바꾸기 위함이다. 지난 3일동안 더불룸에 머무면서 지출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싱글룸으로 방을 바꿨다. 가격 차이는 7천실링으로 식사 3끼 정도 금액이기 때문이다. 싱글룸에도 있을건 다 있었다. 냉장고, 에어컨, TV. 더불룸과 별 차이가 없어서 좋았는데 화장실과 세면장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단다. 그게 조금 걸리지만 여기서 내내 머물건 아니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어느새 짐정리가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정리하는데 시간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뚝딱 해치웠다. ㅋㅋ 여기온지 4일밖에 안됐지만 느는 건 짐 싸기와 돈 쓰기다.ㅎㅎ...

 

짐을 옮기고 일요일이어서 예배를 드리고자  시내 교회로 이동했다.  지금 가는 교회는 지난번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오다가 발견한 곳이다.  몇시에 예배가 시작되는 지 모르지만 그냥 출발했다. 도착하니 10시 반쯤 된 거 같다. 교회에 들어가니 이미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참석인원이 200명은 넘어보였다. 꽤 큰 교회란다.  예배 내용이 스와힐리어다 보니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광고를 하고 누군가가 나와서 기도를 한다. 예배 중에 나는 옆에 있는 꼬마친구랑 사진을 찍었다. 옷이 좋아 보였다. 좀 사는 집 아이같다. 

어떤 사람이 나와서 광고를 하고 종이를 교인들에게 나눠주길래 나도 받았다. 교회 건출을 위한 후원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돈이 없는 관계로 종이만 감사히 챙겼다. 

설교는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설교말씀 시간이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안되는데.. 어차피 들어도 모르겠지만 교회를 다니는 나로서는 설교는 꼭 들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이번에는 새로온 사람 환영하는 시간인가보다. 몇 몇 사람이 일어났고 교인들 대부분이 갑자기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도 새로 왔으니 일어나라고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차마 일어날 수 없어서 그냥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미스코리아처럼.. 그들이 환하게 미소로 답례를 해줬다. 그러면서 계속 쳐다보는데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그리고 앞으로 나오게 해서 말 시킬까봐..>.<

 

예배를 다 마치고 나니 12시 반이었다. 밥을 먹으러 갈까 하다가 아는 현지인 집에 놀러가자는 말에 주저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달라달라를 타고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현지인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어머니는 안계시고 딸은 결혼해서 다른 동네에 산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딸이 사는 곳에 데려다 주신다는 아주머니 말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따라 나섰다. 꽤 걸었던 거 같다. 

날은 덥고 다리가 아팠다.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금방 도착한다길래 믿었다. 우리나라의 ‘금방’과 아프리카의 ‘금방’의 의미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드디어 도착했나보다. 다시 찾아가라면 절대 못올 동네... 내가 길눈이 어두운지라..ㅋㅋ

 

아주머니와 함께 도착한 곳은 딸과 남편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좁은, 그냥 방 한칸, 밖에 옆집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같은 공간이 있었다. 문을 두두리니 딸이 남편과 함께 있었다. 잘 찾아왔나보다. 너무나도 반갑게 우리를 맞은 부부를 보니 괜치 반갑고 좋았다. 

딸의 이름은 네마(Neema 은혜)였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나이를 물어보니 남편은 25살, 네마는 이제 20살 정도였다. 내 나이를 얘기했더니 무지 놀란다. 어려보인다면서 나를 칭찬했다. 흐미~ 사람들의 눈은 비슷한가 보다. 어려보인다는 얘기 여기서 원없이 듣는다.^^

 

 

어려운 형편인데도 손님을 접대한다고 소다 음료를 사다 주었다.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거절하지 않고 마셨다. 옆집에 사는 자매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 중 언니는 자녀가 한명 있는데 남편이 얼마전에 죽었단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쓸쓸하고 마음이 아파보였지만 엄마이기에 씩씩했다. 그 모습이 고마웠다. 씩씩하게 잘 살아줘서~

한참을 대화하는데 배가 고팠다. 원래 계획은 잠깐 인사만 하고 시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우리가 배 고픈지도 알고 우리에게 맛난 것을 해 주겠다면서 우갈리를 만들어 준단다. 살짝 고민을 했다. 우갈리를 만드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이다. 다른 일정에 차질이 있겠지만 일요일이기도 하고 또 언제 이렇게 직접 만들어 주는 우갈라리를 먹어보겠는가...우리는 다음 일정을 포기하고 우갈리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에게 우갈리를 만들어 주고자 남편에게 부탁해 옥수수 가루를 사오게 했다. 본인들도 힘드면서 꼭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는 네마와 남편. 어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할 수 있을까?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다. 옆집 자매가 옥수수 가루를 물과 섞어서 화로불에 계속 끌이고 있는 사이 네마는 소스를 만들었다. 토마토와 양파, 기름등을 이용해 소스를 만든다. 우갈리를 만드는 동안 참 많은 대화를 했다. 사실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정말 상관없었다. 감정과 마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또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 씀씀이가 무척 이쁜 네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중이란다. 안타까웠던 것은 얼마 전 고된 일로 인해서 아이를 한번 유산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오늘 여러번 마음이 뭉클해 지면서 쓰라렸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거라고 위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거 밖에 없었다. 

 

옥수수 가루가 쫀득해 질때까지 계속 저어야 한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말을 건냈더니 나는 너무 연약해서 할 수 없을거라고, 젓는것이 굉장히 힘들다고 얘기했다. 그 말에 나이도 내가 많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덤볐다. 한 두바퀴 저었을까? 정말 힘들고 팔이 아팠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거기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못할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이.. 오메~ 나의 행동으로 그들이 웃을 수 있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우갈리도 완성되고 소스도 다 완성되었다. 아프리카 전통 음식, 우갈리를 체험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다. 우갈리가 완성된 모습은 하얀 빵 같았다. 먹기 전에 못 먹겠으면 안 먹어도 된다는 네마의 말에 살짝 긴장했다. 우갈리를 식혀서 토마토 소스에 찍어 먹었다. 오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맛있었다. 내가 맛있다고 하니까 특이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외국사람이 먹기에는 조금 싱겁고 맛 없을수도 있었을텐데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에 네마도 행복해했다. 우갈리로 늦은 점심(3시 30분)을 먹으면서 더 많은 대화를 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거운 오후를 보낸거 같다. 오후 시간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들도 행복했었으면 좋으련만~ 헤어질 시간을 앞두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가져간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작은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서로 고마워했다. 

 

부부가 버스 타는데까지 배웅을 나왔다. 가는길에 뭔가 대접을 하고 싶은데 돈을 줄 수는 없고 해서 쌀과 옥수수 가루를 사주기로 했다. 네마한테는 우리가 필요하다면서 쌀과 옥수수 가루를 살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가는 길목에 있었다. 쌀과 옥수수 가루를 잔뜩 샀는데도 10,000실링이 넘지 않았다.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저렴하긴 한가보다. 쌀과 옥수수가루를 사서 버스 타는데로 이동했다. 헤어질 인사를 하고 내 명함을 주었다. 비록 연락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리고 쌀과 옥수수 가루를 건내줬다. 안받겠다고 완강히  거절하는데 내 마음의 표시라면서 건냈다. 사실 네마에게 제발 받아달라고 부탁했다.~ㅋ 나의 이런 모습 때문인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줬다. 고마웠다. 

 

달라달라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고 가져간 자료를 가지고 스와힐리어 공부를 했다. 현지인과 만나다보니 대화가 안되는 것에 마음이 좀 어려웠다. 잠깐의 공부가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스와힐리어 기초는 익혔던 터라 다행이었다. 가져간 자료가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스와힐리어 자료(나와 Africa가 2005년 스와힐리어 강좌를 개설하면서 수많은 강의를 통해 완성된 자료이다. 땀과 노력이 담겨있는 이 자료가 책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를 통해 2시간 정도 열심히 공부했다. 어찌나 집중도 잘 되던지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가만보니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거 같다. 조금만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부한다면 스와힐리어로 대화하는 그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곧 오리라~^^

 

8시가 훌쩍 넘긴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 멀리 가기도 귀찮고 내일 은좀베를 가는 것 때문에 짐을 싸야하기에 호텔 식당으로 갔다. 매일 아침만 먹다가 저녁을 먹는 거는 처음이라 어떻게 식사가 나올 지 모르겠다. 뭐 다른데하고 비슷하겠지~ 호텔 식당은 저녁엔 주로 바로 이용하나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갑자기 맥주가 확~ 땡기길래 후라이트 치킨하고 맥주를 시켰다. baridi(차가운) 한걸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며, 마치 독일의 한 호프집에 온 것같은 느낌으로 저녁시간을 즐겼다. 맥주 맛도 좋았다. 내가 마신 것은 ‘킬리만자로’라고 외국인들이 주로 마시는 맥주란다~ 현지인이 먹기에는 조금 비싸서리~ 

 

식사도 다 하고 다시 숙소로 올라와서 짐을 쌓다.  은좀베에서 하루만 머물 예정이어서 간단한 옷가지로 가방을 꾸렸다. 은좀베에 가고 오는 데 이틀걸리니까 하루만 머물기에는 너무 짧고 아쉬운 일정이긴 하다. 파트너는 은좀베에 같이 합류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각자의 활동을 하게 되는 기간이었다. 혼자 거기까지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용기를 냈다. 그리고 꼭 한번 방문해야할 곳이기에 가게 된 것이다.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짐을 싸는데  땀이 삐질 났다. 다 싸고 샤워를 했다. 시원한 건 잠깐이다. 샤워해도 더운 다르에살람에서 잠깐의 이별을 앞두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기에 잠을 청했다.

 

 

by 깜찌기posted Feb 03, 2007

 

 

셋째날 아침, 부비 부비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였다. 

한국에서는 정말 일어나기 힘든 시간인데 이 새벽에 일어나는 걸 보니 아프리카가 정말 내 체질에 맞나보다. 어제 인제라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직도 소화가 안된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내가 묵은 호텔은 4층이어서 내려가는 길에 소화가 다 될 것 같네~). 

어제와 다르지 않는 아침 식사 메뉴.. 그래도 좋았다. 오늘은 다행히 아침에 전기가 나가지 않았기에 호텔리어에게 얼른 토스트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드디어 살짝 구운 토스트를 먹어볼 수 있게 되었다. 

우유와 토스트, 바나나와 파파야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평상시에는 아침도 잘 안 먹는 내가 여기서 꼬박 아침을 챙겨먹고 있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서 다시 뚱뚱해 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ㅋㅋ

식사를 다 마치고 숙소 정리를 대충하고 샤워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어찌나 덥던지..

 

 

 

오늘은 유일하게 정부가 운영하는 ‘다르에살람 대학’에 방문할 예정이다. 

공식적으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란다. 그나마 요즘 공부하기에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현지에 계신 한국 선교사님들께서 대학을 설립하시려고 많은 준비를 하고 계신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 더 많은 학교가 생겨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지면 좋겠다. 

다르에살람 대학도 우리나라 대학 못지않았다. 솔직히 나름 선입견이 있었는데 별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조금 민망했다. 잔디에 앉아 토론하는 사람, 야외수업중인 사람, 대화하는 사람, 과제하는 사람까지 그 모습은 우리와 똑같은 학생이었다. 왜 다를거라 생각했을까? 역시 선입견만큼 무서운 건 없는 거 같다. 

학생들을 보니 열심히 공부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열심히 했지...ㅋ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열심히 공부했을까?ㅋㅋ 그래도 나름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한 실력인데...믿을련지는 몰겠지만..쩝..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살짝 했다. 정말 살짝..ㅎㅎ

동양인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 게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은 딱 2명이다. 한명은 대학에, 또 한명은 대학원에). 식당에도 갔는데 점심시간인지라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 소다음료만 마셨다. 나는 콜라를 좋아해서 마셨건만 한국 콜라보다 맛이 심심했다. 다행히 시원해서 먹을만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소다 음료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시원하게는 먹지 않는다. 시원한 소다 음료를 마시려면 꼭 주문할 때 ‘baridi-차가운’라고 외쳐야 한다. 

 

투어도 끝내고 음료도 마셨겠다 시내로 이동하려고 학교 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사람이 무지 많았다. 

시내에서 먼저 간 곳은 우붕고(Ubungo) 시외 버스터미널이다. 우붕고 터미널에서 은좀베(Njombe)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Njombe에는 한국 선교사님께서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설립해서 사역하시는데 그 선교사님 댁을 방문(9월 18일)하기로 했다) 버스 모양을 봤는데 우리나라 버스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차 자체가 굉장히 높았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라던데.. 아프리카, 특히 탄자니아에는 소매치기들이 굉장히 많아서 차가 신호 때문에 잠깐 서게 되면 그 사이 차 안에 있는 것들(사람들이 차고 있는 시계, 가방, 모자 등)을 가져간단다. 차를 탈 때 덥더라도 창문을 다 열어두면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버스 티켓(9월 18일 새벽 6시)을 끊고 핸드폰을 구입하고자 시장으로 갔다. 7만실링의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칼라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좋았다. 전화를 걸 일이 많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일이 생길 때 아주 유용할 거 같다. 구입할 계획이 없었던 지라 여행 경비에 조금 손해가 있으리라~ㅎㅎ

핸드폰을 구입하고 나니 어느새 1시가 넘어 있었다. 배가 고프다. 밥을 먹어줘야 할 듯~

아는 분 소개로 현지 식당을 가려고 이동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다행이 옆집에도 현지 음식점이어서 거기로 들어갔다. 내가 먹은 것은 닭고기 조림 같은거와 밥이었다. 처음으로 먹는 현지 음식이라 설레였다. 음식의 모양은 별로였지만 오우~ 맛있었다. 사실 외국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나갈 때마다 고생을 했는데 여기는 달랐다. 애초부터 기대를 안했었기에 그런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역시 아프리카가 내 체질인가보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남정네가 우리 테이블에 앉더니 말을 시작했다. 식당 안에서 과일을 파는 남자였다. 나에게는 별 다른 말을 걸진 않았지만 눈치를 보니 나를 맘에 두고 있는 듯 했다. 이놈의 인기란~~ 스와힐리어로 열심히 말을 했지만 알아듣진 못했다. 크헐~ 그 남자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과일을 한 접시 주는 거다. 그냥 주는 거란다. 고마웠다. 왜 주는지는 몰랐지만 맛나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남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인사도 안하고..쩝.. 나중에 듣기로는 그 남자가 내가 맘에 들어서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다. 나에게 잘 보일려고 과일을 준건데 내가 곧 떠날거라는 말에 시무룩해져서 어디론가 사라진거라고...흐미~~ 이 얘기를 듣고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 인기~ 아프리카에서나 인정받는 나의 미모~ 조금 슬펐다...ㅋ 한국에서는 어찌 이런 기분을 느껴보랴..ㅋㅋ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현지 조사를 위해 달라달라를 타고 어느 동네에 들어갔다. 동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 사람들의 인심이 너무 좋았던 것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동네에서 여러 주민들과 대화를 했다. 우리에게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참 좋은 사람들 인 거 같다. 어떤 아저씨는 한 컵에 50실링 하는 생강차를 공짜로, 그것도 여러 번 주었다. 차마 그냥 마실 수 없어서 돈을 내긴 했지만 한사코 말리는 그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내 주민들의 도움으로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낯선 사람인데도 너무나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사람들..다음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이곳 주민들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모든 여행 일정이 다 마치고 돌아갈 때 한번 더 이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꼭 봤으면 좋겠다.

 

 

 

시간은 어느새 5시를 훌쩍 넘겼다. 6시가 넘으면 퇴근시간과 교통체증이 심했기에 일찍 서둘려야야 한다. 달라달라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데 생강차의 여운이 입안에 가득했다. 다시 먹어보면 좋으련만..왠지 다시 가보지는 못할 거 같은 생각에 마음이 쓸쓸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먼지를 많이 뒤집어썼기에 한바탕 씻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밖은 어두웠다. 시계를 봤더니 8시가 넘어 있었다. 늦은 시각이라 멀리 가진 못하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갔다(아무래도 외국인은 밤에 돌아다니면 위험에 바로 노출되는 거다)

식당 안이 시끌시끌했다. 이유가 뭔지 봤더니 우리가 간 식당을 빌려 결혼 피로연을 하고 있었던 거다. 신랑도 보이고 신부도 보이고 많은 하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이 노래를 하고 있는데 가수인가 보네. 잘한다~ 아프리카에서의 피로연 장면을 보게 되다니..감격스러워서 얼른 사진을 찍었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사진이 흔들렸다. 아까워라>.< 

많이 시끄러웠지만 저절로 흥이 나서 그냥 식사하기로 했다. 오늘도 여전히 난 닭고기를 시켰다. 후라이드 같은 모양으로 나온 닭요리는 맛이 좋았다. 사실 배가 무지 고팠었다. 밥을 먹고 나니 너무 행복했다. 내가 이렇게 밥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사람인 줄 여기서 처음 알았다. ㅎㅎ

 

오늘은 수확이 많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정보를 얻고, 아프리카 문화도 보고~ 여러가지로 즐거운 하루였다. 내가 밟는 모든 땅,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이 함께하길 소망하며 아프리카에서의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TIP 6. 우리의 소중한 필수품, 핸드폰 개통하기...

한국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필수품, 핸드폰. 아프리카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사용료가 많이 비싸서 사용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지만.. 그래서 대부분 문자로 연락을 하곤 한다. 다르에살람 사람들은 핸드폰을 사려고 열심히 돈을 번다. 심지어 한량들도 핸드폰은 거의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핸드폰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중한 존재이다. 핸드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흑백 종류로 5만실링~7만실링, 칼라는 10만실링~20만실링 정도이다. 삼성제품도 있지만 질이 좋은 만큼 가격대가 무지 비싸다(20만실링 이상). 노동자 한 달 임금이 10,000실링 정도 이니까 엄청 비싼거다. 아프리카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핸드폰 사용은 영국과 동일하단다.

1. 핸드폰 전문 판매 상가에 가서 핸드폰을 구입한다. 

2. 번호가 내장되어 있는 칩을 산다.

3. 핸드폰 베터리를 빼면 칩을 끼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칩을 끼우고 배터리도 끼운다.

4. 충전식 카드(5,000실링, 10,000실링, 20,000실링 등 금액은 다양)를 사서 핸드폰에 등록(스크래치를 벗기면 번호가 보인다. 그 번호를 등록)한다.

5. 구입한 금액만큼 핸드폰을 이용한다>

 

<TIP 7. 핸드폰 저렴하게 이용하기

1. 통화료가 비싸니까 문자를 이용해 대화한다.

2. 우리나라는 발신번호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소정의 돈을 내야하지만 아프리카는 발신번호서비스가 무료이다. 아니, 당연히 지원되는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급하게 통화를 해야 할 때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고 신호가 울리면 바로 끊는다. 그러면 상대방이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로 연락을 해 온다(좀 치사하지만 아프리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이용한단다)>

 

 

by 깜찌기posted Dec 13, 2006

 

 

 

 

우리는 럭셔리 호텔에서 나와 다시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계속 말을 걸어오는 한량들~~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나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다. 다들 나랑 대화 한번 하고 싶어서 애를 쓰더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어떤 한량하고는 열심히 대화를 해줬다. 감격해 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더라~ㅋㅋ

또 한번은 지나가는데 오렌지를 파는 남정네가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오렌지를 하나씩 깍아 주면서 먹으란다. 마침 목도 마르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한개 50실링, 100실링) 하나씩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그냥 주는거라면서 괜찮으니 하나 더 먹으라고 하는거다. 내가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니 진짜로 그냥 주는 거란다. 맘 변할까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렇게, 이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장사를 하는 남자까지도 나를 불러세우니..이들을 위해 여기서 한 1년 정도는 살아줘야 할것으로~~ㅋㅋ

 

시내를 다 구경하고 저녁을 굳이 사준다는 Africa를 만나러 내가 좋아하는 롬보호텔로 이동했다. 어제 헤어지면서 Africa가 에티오피아 음식점에 데려가기로 했기에 7시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거였다. Africa는 차를 가지고 호텔 앞에 이미 와 있었다. 새로운 사실은  Africa가 운전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는 거다. 지난 4년을 알았지만 한국에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ㅋㅋ 장롱 면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운전을 잘 하시더라. 사람은 역시 관계를 오래 해야해~ㅎㅎ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Africa는 우리에게 학교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를 데리고 가자고 요청했다. 우리는 흔쾌히 승낙했고 노르웨이 사람인 ‘랄스’를 태우러 그의 집 앞으로 갔다. 

랄스하고 인사를 나누고 에티오피아 음식점으로 출발했다 .

에티오피아 음식은 한국사람 입맛에 딱 맞는 거 같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담백하고..등등 여러가지 소스를 이용해서 먹는 음식으로 각 소스마다 맛이 굉장히 자극적이고 맛이 좋았다. 

 

도착해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랄스가 자기 친구들 2명이 더 올거라면서 양해를 구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온다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탄자니아에서 외국인을 사귀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 적극 환영했다(사실 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ㅋㅋ).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한국 이렇게 4나라의 사람들이 만났다. 탄자니아에서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남을 갖게 되다니..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어서 그런지 음식도 너무 맛있었다. 분위기도 좋았고, 대화도 좋았다.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들과의 만남이 더욱 좋았던 건 외국인들은 대부분 더치패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식사비를 똑같이 나누어 냈다는 거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고 돈은 나눠 내고 일석 이조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이런 문화 좋네~ ㅎ

 

서로가 즐겁고 재미있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따로 연락처를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뒤로하고 헤어졌다. 이들은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고 우리는 Africa가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사실 이들과 대화를 많이 한 건 아니다. 여기에는 언어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친구를 사귀게 될 때는 언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대화를 하는데 조금 불편했지만 따뜻한 눈빛과 애정, 사귀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전 세계 그 누구를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를 잘한다면 대화를 하는 데 더 좋은 관계가 형성되겠지만 혹 언어를 못하더라고 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 언어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오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국인을 만나도 선뜻 다가설 수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들과의 만남은 신선했으며 또 다른 자극이 되었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사라질 것을 안다. 

 

나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만남, 새로운 세상이 탄자니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 끝이 어딘지, 무엇인지, 어떤 모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껏 부푼 마음,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탄자니아에서의 둘째날을 마감할 수 있었다.

    

<TIP 4. 에티오피아 음식점...

다르에살람에 있는 유일한 에티오피아 음식점으로서 현지인들은 가격이 비싸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지 못한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인제라(Injera)' 라는 음식을 먹는데 인제라는 아프리카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테프(teff)라는 곡물의 가루가 주원료이다. 인제라는 조리방식이 우리나라 부침개와 비슷하다. 하지만 부침개보다도 훨씬 얇다. 얇다고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 뱃속에 들어가는 순가부터 부피가 점점 늘어나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맛은 시큼하고 쫀득쫀득하다. 탄자니아에서의 인제라는 넓고 큰 접시에 각각의 스튜 형식의 소스를 올리고 인제라를 조금씩 떼어내면서 스튜를 싸서 먹는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보통 인제라와 스튜를 따로 담아내고 인제라를 조금씩 뜯어 스튜에 싸 먹는다. 소말리아에서는 인제라를 라호흐(lahoh)라고 한다. 

한국인 뿐 만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외국인들도 먹기에 좀 비싼 편이라 3명 이상이 와야만 푸짐하게, 그리고 좀 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2명이 오면 많이 비싼가격에, 종류도 한정되어 있어 좀 불리하다. 그래서 나중에 이 음식점을 가고자 한다면 3명 이상 무리지어, 특히 더치패이가 일상인 외국인들과 갈 것을 적극 추천한다> 

 

<TIP 5. 인제라 만들기...

테프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덩어리 지지않게 섞는다. 잘 섞인 반죽은 헝겊을 덮어 실온에서 반죽에 거품이 생기고 시큼해 질 때까지 3일 정도 둔 다음 소금을 넣는다. 반죽은 팬케잌 만들 때 정도의 농도가 적당하다. 솥뚜겅처럼 생긴 조리 도구에 반죽을 부어 앏게 펴가면서 중간정도의 화력으로 만드는데 국자로 떠서 팬에 두르고 표면에 구멍이 나타나고 마르면 꺼내어 식힌다. 쉽게 말해 부침개처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빵인 크레페수제트보다는 두껍고 팬케이크보다는 조금 얇게 만든다고 한다>

 

by 깜찌기posted Dec 13, 2006

 

 

너무 더워서 계속 잘 수가 없었다.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6시(한국 시간보다 6시간 느리다)였다. 한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시간에..너무 더워서..ㅋ

어제 ‘다르에살람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온다’라는 Africa 말이 생각나서 얼른 에어컨을 켰다. 한시간이라도 시원함을 느끼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었다. ㅎㅎ

시작부터 럭셔리한 호텔에 머물게 되면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호화롭게 여행을 시작했다. 난 아마도 이 호텔(에어컨 너무 좋더라)을 무지 사랑하게 될 거 같다.ㅋㅋ

 

 

(TIP 1. 호텔정보)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부터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으로 준비된 것은 파파야, 콘푸레이크, 빵, 우유, 패션주스(과일 이름이 ‘PASSION'이다)이다. 전기가 나간 관계로 빵을 구워주지는 못한단다. 으~ 언젠가는 먹고 말거야~~ 

정말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시내 투어를 시작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샤워하고 예쁘게 화장(기미를 방지하고 자외선을 차단하고자 매일 아침마다 화장을 함)한 다음 호텔 앞에서 달라달라(교통수단)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가본 곳이 한 호텔이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보다도 훨씬 더 럭셔리한 곳에 잠깐 들어가 봤다. 이름이 Movenpick Royal Palm Hotel 이었다. 로비부터해서 정말 좋더라. 우리나라 호텔 못지않게 좋았다. 여기 하루 숙박비는 150$정도 될라나? 부끄러워서 물어보진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몇몇 지나간 것 같은데.. 이 호텔에 머무나보다. 이렇게 좋은 호텔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하는 지 궁금했지만 그들을 붙잡고 굳이 묻진 않았다.   

 

호텔 구경을 다 끝내고 환전하러 환전소로 이동했다. 재미있는 것은 환전소마다 환전해주는 금액이 달랐다. 입구에 게시판을 세워두고 손님들에게 홍보하고 있었다. 제일 높게 써있는 곳에 들어갔다. 1$에 1340실링이고 며칠 뒤에는 1400실링정도로 오른다는 얘기에 500$ 정도만 환전했다. 나중에 더 환전해야지..(근데 다시 환전했을 때는 정부에서 환율 조정을 하는 바람에 1200실링대로 떨어졌고 많이 손해봤다. 으~)

환전하는 곳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에미레이트 항공사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한국 입국 일정을 연기하고자)에 가 봤는데 점심시간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이따 다시 와야 겠다.

 

시내를 몇 곳 돌아다녔다. 다니다가 배가 고프길래 시계를 봤더니 12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역시 배는 정확해~ㅎㅎ

파트너는 잠깐 만날 사람이 있다면서 2시 이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시내 중심에 인터넷 카페도 있고 여러 종류의 식사를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넷 카페에는 사람이 무지 많아서 차마 이용할 수는 없었다. 가게는 햄버거, 중국요리, 인도요리 등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난 고심 끝에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프리카에서 먹는 햄버거의 맛이 궁금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한국처럼 내용물이 많이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맛이 깔끔했다. 맘에 드는 것은 감자가 엄청 크고 양이 많다는 거다. 

식사를 다 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다. 중간 중간에 사람 구경도 했다. 다양한 옷차림에, 다양한 얼굴을 하고, 다양한 말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들은 그냥 ‘사람’이었다. 유럽인, 한국사람, 인도사람, 중국사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르에살람에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지금 여기에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서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난 거 같은데 파트너는 오지 않았다. 시계를 봤더니 2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더 이상 책보는 거,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없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이리 저리 돌아나녔다. 길거리에서 파는 여러 상품들도 구경했다. 

내가 이쁘다고 어찌나 말을 걸어 오던지.. ㅋㅋ 내가 웃으면서 살짝 인사를 해줬더니 더 좋아한다. 오메~난리나심~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처음에 도착했던 호텔이 눈에 띄었다. 날씨도 너무 덥고 해서  호텔 로비에서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호텔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들을 하느라 내가 오래 있어도 신경쓸 거 같지 않았다. 오예~

한참을 책에 열중하고 있는데 호텔 입구 저 멀리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내 파트너였다. 얼굴은 잔뜩 굳었고, 더워서 그런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순간 무서웠다. 위기를 모면하고자 ‘왜 이리 늦으셨어요?’라며 방긋 웃어주었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나의 파트너는 결국 화를 내더라. ‘내가 너를 찾으러 얼마나 돌아다닌 줄 아냐,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그냥 있지 왜 이동했냐..’, ‘우리가 못 만났으면 어찌할뻔 했냐’ 등등...  어찌나 말을 끊이지 않게 하던지.. 신기했다.ㅋㅋ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로 싹싹 빌었다. 마음이 넓으신 분(?)이라 다행히 그걸로 마무리 되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사에 다시 방문했다. 전기가 나가 번호표를 끊고 기다리지 못했다. 번호표가 없어도 온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줬다. 

항공사를 방문한 이유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짜가 10월 5일이었는데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어 7일로 연기하려고 방문한 것이다. 직원의 말은 표가 없어서 안된단다. 5일 날짜를 취소하고 대기 상태로 있을거냐고 묻길래 그냥 놔두라고 했다. 바꿨으면 좋았을 걸..내심 기대했는데..무지 무지 아쉬웠다.

 

 

<TIP 1. 롬보호텔은....

4층의 건물이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사실 동네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싱글룸, 더블룸, 스위트룸으로 나뉘는데 싱글룸은 더블룸과 내부 구조는 거의 같다. 단 방 안에 화장실이 없다는 거~ 그리고 아침 식사는 한명분만 나온다는 거~ 방마다 TV, 냉장고, 에어컨이 기본 옵션으로 되어 있다. 가격은 싱글룸은 18,000실링, 더블룸은 25,000실링, 스위트룸은 30,000실링이다. 더블룸의 경우 침대가 하나 있는 방도 있고 2개 있는 방도 있는데 그건 선택하면 된다. 스위트룸은 너무 비싸서 들어가보지도 못했고 처음에는 더블룸에서 며칠 머물다가 나중에는 돈이 없는 관계로 싱글룸에서만 지냈다>

 

<TIP 2. 아프리카에서의 화장...

아프리카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썬크림을 바르는 건 필수다. 그리고 가능하면 썬크림만 바르지 말고 한국에서 화장을 하는 것처럼 메이크업 베이스, 트윈케익까지 바를 것을 권장한다. 화장을 하는 것이 강렬한 태양을 그냥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 아침마다 화장을 열심히 한 게 도움이 되었는지 나중에는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피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냥 혼자만의 생각에..ㅋ)>

 

<TIP 3. 달라 달라 너를 보여줘...

 

우리나라 봉고차보다는 크기가 조금 크다. 버스처럼 요금을 내고 몇 명을고 태워서 이동한다. 달라 달라 앞 범퍼에 보면 가는 목적지가 친절하게 써 있으니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맞는 차를 타면 된다. 요금은 200-300실링인데 보통 200실링이고 거리에 따라 300실링을 내기도 한다. 현지인들은 짧은 거리면 눈치껏 150실링을 내기도 하더라>

 

by 깜찌기posted Nov 22, 2006

 

 

 

비행기에서 내렸다. 현지 시간은 2시 30분이었다.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해 입국장으로 이동했고 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와서 난 살짝 웃으면서 직원에게 ‘Habari’라고 인사를 했다. 직원도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인사까지는 좋았다. 

 

<tackle 1>

내 여권과 입국 카드를 보고 한참을 옆의 직원과 대화를 하더니 나를 옆에 있는 칸으로 불렀다. ‘뭐가 잘못됐나?’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비자에 문제가 생긴 건지, 여권에 문제가 생긴 건지 그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옆 칸으로 이동을 해서 다른 직원에게 심사를 받았다. 내가 답답한 마음에 ‘문제가 뭐냐?’라고 물어보니 대꾸를 안하는 거다. 오메..발음이 이상한가? 쩝.. 암튼 다시 또박 또박 물었다. ‘What's the problem?' 그제서야 'No problem'이란다. 문제가 없는데 왜 안 보내주는지.. 영문도 모른 채 한 10분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아무도 그 이유를 얘기해 주지 않았다. 하긴 얘기해도 못 알아들었겠지만.. 

나랑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은 벌써 다 나갔나보다. 보이지 않았다. 나도 가고 싶다.드디어 문제가 해결이 되었나 보다. 오래 세워둔 거에 대한 미안함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래서 나도 인사도 안하고 그냥 홀연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tackle 2>

나가기 전에 검색대에 가방을 내려놓고 검사를 받는데 직원이 나를 부르더니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또 겁이 났다. 위험한 물건(사실 위험한 물건은 별로 없었다. 과도를 빼고는..)은 이미 수하물로 보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당황했다. 지정한 가방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오메~ 거기에는 한국에서 챙겨간 젓가락과 수저가 있었던 것이다.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좀 민망했다. 위험한 거 아니라는 내 말에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길래 얼른 가방에 집어넣고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어이가 없었는지 한번 웃더니 나를 보내주었다. 사실 내가 좀 순진한 얼굴로 쳐다보았기에 그냥 보내준 거 같다. ㅋㅋ

 

내가 다른 사람보다 한참을 늦게 나왔건만 밖으로 나가는 줄이 굉장히 길었다. 그 이유는 입국하는 사람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어보는 것이었다. 오메.. 정말 탄자니아 들어가는 게 너무 어렵다. 오늘 안에 갈 수 있을런지..쩝.. 직원이 앞에 있던 몇몇의 사람들의 짐 속에 있던 물건들을 압수했다. 가져갈 수 없단다. 나도 그럴까봐 마음 잔뜩 졸이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내 앞에서부터는 가방을 다 열어보진 않는 거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다행히 가방은 열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예쁘게 생겨서 그런지 그냥 가란다..ㅋ 기쁜 마음에 나가려는데..  

 

<tackle 3>

나를 잡는 손이 있었다. 어떤 여자 분이 나를 붙잡아 세우더니 물었다. ‘이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냐, 음식물 같은 거 없느냐?’ 나는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전혀 그런 거 없다. 다 옷이다’라고 얘기했다. 사실 가방에는 먹을 것이 잔뜩 들어있었다. 나의 당당함에 놀랬는지 그냥 가라고 보내주었다. 역시 사람은 당황하면 안 되는 거야.

 

<tackle 4>

모든 절차를 다 마치고 드디어 다르에살람에 발을 디뎠다. 다른 사람은 쉽게 잘만 가드만..쩝.. 그래도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공부중인 Africa를 만났다. 내가 아프리카를 간다는 얘기를 이미 이메일로 전한지라 공항에 마중 나와 주었다.  Africa는 만나자마자 인사부터 하지 않고 ‘왜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짐을 차로 옮기면서는 '생각보다 짐이 많은 거 같지 않은데 왜 그리 무거워요?'라고 말하면서 투덜~ 투덜~ 오메~~

 

시간은 이미 4시를 향하고 있었다. 공항에서만 1시간이 넘도록 있었던 거였다. 미쵸..주차장에서 짐을 실고 빠져나가는 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 있다.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공항에서 집회가 열렸던 것이다. 거리에서 행렬하고 차에서 집회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가 나가는 데 한참 걸렸다. 

 

나랑 함께 여행할 팀원들은 이미 탄자니아에 9월 초부터 들어와 있었다. Africa의 전화를 빌려 팀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팀원이 있는 롬보호텔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다르에살람 대학 및 시내를 투어할 수 있었다.

 

호텔에 나를 내려주고 Africa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약 3주정도 탄자니아를 함께 여행할 파트너와 미팅을 가졌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정리했다. 먹을 것들, 선교사님에게 드릴 것 등을 분류해서 선물은 선물대로 짐을 다시 꾸렸다. 

 

시간을 보니  6시가 넘어 있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한국에서 싸간 햇반과 김치를 꺼내 저녁을 먹었다. 빨리 먹어야 짐이 좀 줄 것만 같았다. 

저녁을 다 먹고 7시 반쯤에 Africa가 시내에 있는 해변에 데려다 준다는 말에 맥주를 마시고자 해변으로 파트너와 이동했다. 해변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외국인들도 자주 이용하는 곳이란다. 맥주와 음악을 즐기며 1시간정도 놀다가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파트너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세부 일정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일정 잡고 예산 짜고 하는데만 2시간이 꼬박 걸린 거 같다.

엄청 피곤했다. 현지 시간은 밤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한국은 새벽 4시였던 것이다. 여행으로도 지치고 힘든 몸인데다가 시차가 차이가 나니.. 왕~ 피곤하심..ㅋㅋ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부터의 일정이 너무 기대되고 행복했기에 눈은 너무 피곤했지만 잠은 쉽게 들지 못했다.

내일은 아프리카에서의 새로운 태양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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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찌기posted Oct 31, 2006

 
 

한참을 잘 자고 있는 데 코 끝으로 음식냄새가 전해져 왔다.

벌써 기내식을 먹을 때인가 하고 시간을 봤더니 출발한 지 3시간 정도 흘러있었다. 정말 잘 잔거 같다.  다행히 침은 안 흘렸다.

 

첫 번째 기내식은 가볍게 하는 식사로 오므라이스랑 한국식 ‘죽’이 나왔다. 난 죽을 워낙 좋아하는 지라 죽을 선택했는데 맛이 좋았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배가 고프지 않았었다. 근데 먹고 보니 굉장히 배가 고팠나보다. 정말 열심히 먹었다. 오메~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옆 사람과 한마디 말도 없이 열심히 먹기만 했다. 옆에 사람이 외국인이냐? 그렇지 않다. 한국 여자분 이었다. 외국 사람이었으면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아마도..ㅋ

기내식을 다 먹고 이 닦고 또 잤다. 자도 자도 잠이 온다. 이러다 잠순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

 

두 번째 기내식은 자주 등장하는 치킨과 생선이었다. 치킨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 ‘치킨, please'라고 말했다. 옆에 여자분은 생선을 달라고 했는데 내 거보다 더 맛나게 보였다. 생각보다 치킨이 맛이 없었다. 생선을 먹어볼 걸 그랬나보다. 하긴 워낙 새로운 음식에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라 ...아프리카 음식이 안 맞을까봐 그것이 제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참에 살을 왕창 빼오는 것도 좋을 듯..ㅋ

 

시간을 보니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얼핏 보니 창 밖은 깜깜했다. 

아마 한국보다 몇 시간이 느린가보다. 

두바이에 도착하려면 2시간 정도가 남았다.

 

잠도 실컷 잤겠다 일기를 쓰기로 했다. 

여행하면서 일기를 꼭 쓰라는 주변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하긴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아무리 좋은 곳을 다녀와도 오래가지 않음을 잘 알고있기에 나도 이번 여행을 통해 열심히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숙제를 핑계로 열심히 일기를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일기 쓰는 거 좋아했었다. 편지 쓰는 것도..

요새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는 게 익숙치가 않다. 그만큼 내 마음이 건조해 졌다고나 할까? 이번 여행을 통해 건조했던 마음을 좀 녹여 볼란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나름 재미있다. 

혼자 놀아야 하고, 혼자 밥 먹어야 하고, 혼자 사진 찍어야 하지만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으로 혼자 여행을 해 보기를 권한다. 

가끔은 잠만 잘때도 있고, 많이 심심하지만 이번 여행이 나를 재 발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임을 안다.

 

<5:5:5의 미학>

드디어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간을 봤더니 오전 10시였다. 

두바이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보다 5시간이 느렸다. 

재미있는 건 두바이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5시간, 두바이에서 다르에살람까지 가는 데 5시간이 소요된다.

똑같은 5지만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짐을 새삼 느낄 수 가 있었다.

 

 

두바이 공항은 무지 화려하고 멋있었다. 

사람들이 두바이 공항에 볼 것도 많고 화려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좋았다. 인천 공항보다는 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 화려함은 놀라웠다.

면세점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난 그다지 살것이 없기에 그냥 돌아다녔다(사실 돈이 없었음..ㅋㅋ).

두바이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도 구경하고 ‘금’ 도 구경했다. 생각보다 저렴하다. 만약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돈이 좀 남는다면 팬턴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ㅋ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항공권에 게이트 번호가 안 적혀 있어서 관계자한테 물어본 뒤(영어로 물어 봄) 갈아타야 할 비행기 게이트에 도착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니 잠이 왔다. 기내에서 그렇게 잤건만 잠은 또 왔다. 

오메~무거운 배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보조가방과 장바구니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잤다. 시끄럽고 복잡한데도 잠은 잘 오더라. 미쵸~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나를 깨웠다(왕~ 민망하심ㅠ) 이번 좌석은 창가쪽이어서 열심히 밖의 풍경을 찍었다. 사실 어두워서 하나도 안 나왔지만..쩝..

 

해가 떴나보다. 밖에서 비추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르에 살람에 도착한다.

처음 출발 할 때는 별로 못 느꼈는데 막상 5시간 후면 도착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였다. 빨리 도착하면 좋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그 하늘을 마음에 가득 담았다.  

?

by 깜찌기 posted Oct 23, 2006

 
 
9월 13일 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3:50분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기대하고 설레였던 아프리카 여행..
 
오랜 시간 설레이는 마음을 붙잡고 있느라 힘이 들었었다. 
긴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탄자니아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이 왔다.
종일 근무에 피곤할 만도 한데 워낙 마음이 흥분되어 피곤한지도 모르겠더라.
 
내가 타고 갈 비행기는 에미레이트 항공이다.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하고자 얼마나 많은 사이트를 뒤졌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하다 싶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30분이었다. 
수속을 위해 에미레이트 창구에 갔는데 두바이에 가려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나는 연가를 다 붙여서 나름 휴가를 가는 거지만 9월인데도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음에 놀랐다. 하긴.. 우리나라가 어느새 부터인가 년중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고 하던데..
 
수속을 하기 전에 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내가 가져간 케리어와 배낭의 무게를 다 합치면 31kg 정도였다. 알기로는 20kg을 초과하면 그에 따른 초과비를 내야한다는 얘기에 걱정이 앞섰다. 짐을 줄이고 줄여도 30kg 정도 되었기에 가능한 케리어에 넣은 짐은 20kg으로 맞추고 나머지 짐은 배낭에 넣거나 다시 돌려 보내야 했다. 배낭은 그냥 기내로 들고 가야겠다. 
 
짐 수속을 마치고 무거운 배낭(진짜 무겁더라..)을 낑낑대고 들쳐 맸다.
오메.. 벌써부터 힘드심..
 
짐을 빼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나보다.
공항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라고..
들어갈 때 배낭이 너무 크다고 안된다고 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배낭에, 큰 장바구니에,보조가방에,미니 가방에.. 내 손에 들고 있는 짐만 4개나 되었다.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ㅋ
다행이 별 다른 말 없이 들여보내 주었다.  고마웠다.
하긴 이미 짐을 보냈기 때문에 거기서 짐을 빼라고 할 수 도 없었을 것이다..ㅋㅋ
 
이리 저리 짐을 들고 대기하다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좌석은 아주 좋았다. 통로쪽이어서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기에 딱 좋았다.
비록 창 밖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그건 뭐 나중에 봐도 되니까..ㅋ
배낭은 올리고 다른 짐은 의자 밑에 넣고..에구~~드디어 의자에 앉았다.
 
 
 
23:55분 한국을 떠나는 시간이다.
이제 5분만 있으면 비행기가 나를 두바이에 내려 줄 것이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마냥 좋았다.ㅋㅋ
옆사람이 보건 말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러다 셀카의 지존이 되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이룩하나보다..오예~~
근데 왜 이리 잠이오지..
오메~한숨 자고 일어나야겠다.
식사가 나올 때는 나를 깨워주겠지..ㅋ
에미레이트 항공 이불도 꽤 좋은 거 같다..나중에~~ㅋ
긴 여행을 잠으로 시작해서 좀 그렇지만(사실 사람들 거의 다 자더라)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열심히 자고 원기 충전해야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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