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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준비도 없이, 아무 아는 이도 없이 그저 전화번호 달랑 하나 들고 몇 년이나 머물 생각으로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다. 그런데도 아무 준비도 없이, 아무 아는 이도 없는 외국 땅에 가고 말았다. 타고난 낙천적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어, 그냥 아무 준비 없이 가도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달랑 하나 들고 온 전화번호의 주인공, 토니(Tony)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까무잡잡한 피부. 인도인이다.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동안 지도해주시던 교수님 친구, 토니는 털털하게 웃으며 자기 차에 이방인을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그렇잖아도 배가 주려 있던 참에 그가 직접 요리해 내준 음식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목구멍으로 넘겼다. 목구멍을 넘어 들어가는 음식은 주린 자에겐 더 없는 행복이리라. 

 

토니는 겨우 마흔 이쪽저쪽으로 보이는데 벌써 큰아들이 대학교 1학년이란다. 그리고 그 큰 아들 리납(Rinaav)은 바로 전날 축구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한다. 토니는 나 편히 쉴 방 하나 내주려고 녀석 다리가 부러졌나 보다 라며 웃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무릎 부위를 다쳐서 그리 웃으면서 이야기할 만한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다. 것도 모르고 불쑥 찾아와 미안했다. 사정이야 어쨌든 당분간 먹고 잘 곳이 생겨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쉬라며 안내해준 큰아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우며, 오랜만에야 제대로 된 잠자리에 눕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잔 하룻밤을 빼고는 전부 침대에서 누워 잤는데도 말이다. 

 

토니의 가족은 토니, 부인 라쉬르(Rashree), 대학 1학년인 큰 아들 리납(Rinaav), 고등학교 다니는 둘째 아들 리반(Rivaan), 그리고 여섯 살 난 막내딸 쉬리아(Shiria)까지 모두 다섯이다. 토니는 공장에서 빵을 가져다가 근방의 대학 기숙사와 작은 점포들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부인은 사회 복지사 일을 하며 동시에 학교에서는 석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다. 그들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5시에 토니는 공장으로, 6시엔 라쉬르가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일터로 각각 나선다. 둘째 아들 리반이 조금 늦게 학교로 나간다고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일찍 일어난다고 해도 녀석이 학교 가는 걸 본적이 없으니 적어도 7시 반 이전에는 나가나 보다. 그리고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토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온갖 잡다한 집안일을 다 한다. 요리도 하고 아이들 데리러 학교에도 가고 한다. 토니처럼만 가사를 돕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아내에게 있어, 더 없이 좋은 남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병원에 있는 아들에게 퇴원하기 전날까지 매일 문병도 갔다. 그리고 내가 온 이후로 새로운 일거리로, 내가 머물 집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가고 싶어 하던 학교에 데려가 구경도 시켜주었다. 토니는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식사와 잠자리는 물론이고, 비자 연장 문제, 학교 입학 문제, 심지어는 기분까지도 세세하게 신경 써주어 가끔 바다도, 술집도 데려다 주고 했다. 며칠 지나자 난 거의 가족이 된 분위기였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집안 청소도 도와야 했고, 설거지에다가 때로는 차 대접까지, 이 집안 식구들이 해야 할 일은 나도 다 하게 되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대며 손님 대접만 받느니, 약간의 수고로 가족 대접 받는 게 훨씬 마음도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을 돕는다고는 해도, 공짜로 먹고 잔다는 것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히려 토니에게 부담이 되었나 보다. 어느 날, 우연히 이 친구가 방안에서 둘째 아들에게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집안에 Song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그에게 무엇이든 부탁해라. 그래야 그 친구도 우리에게 덜 미안해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며칠 후, 새벽 네 시나 되었을 무렵, 토니가 흔들어 깨운다. 빵 납품할 때 옆에서 도와주던 조수가 아버지 부친상으로 며칠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며 도와달란다. 대충 얼굴에 물만 묻히고 토니를 따라 나섰다. 공장에 도착한 것이 아침 다섯 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빵 공장은 부산했다. 토니가 공장장이라는 귀여운 인도인 여자를 소개했다. 나이를 묻진 않았지만 어려 보였다. 길에서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겨우 고등학생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공장직원들에게 뭔가 지시하는 목소리는 야무졌다. 서류를 검토하고, 빵 기계를 점검하는 모습은 당당했다. 토니에게서 토니 조수 사정을 들은 후, 그녀는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토니는 가져가야 할 빵들을 확인하고, 내게 차에 실어달라며 부탁했다. 실어야 할 빵 상자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마에 어느 정도 땀을 맺히게 하기엔 충분했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 맺어가며 조수는 열심히 빵을 차에 실고 있건만, 토니는 제 직장 동료들과 껄껄 웃어가며 수다 떨기에 정신이 없다. 한국인을 이렇게 조수로 부리는 사람은 남아공에 자기밖에 없을 거라며 껄껄대는데, 약간 얄밉기까지 했다. 이렇게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 이랬던가? 공짜로 얻어먹고, 얻어 자고 하는 주제에, 일 조금 안도와 준다고 벌써부터 은인을 얄미워한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오늘은 충실한 조수가 되어 운전 외에는 토니가 할 일 없도록 해주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금 후, 토니는 파이 몇 개와 차 두 잔을 들고 왔다. 둘은 바닥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아까 공장장이 이쁘네, 어쩌네 하는 농담으로 낄낄댔다. 그렇게 며칠 동안 토니의 조수로 새벽에 일어나, 어여쁜 공장장을 보고, 더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이런 토니의 모습은 요새 말로 감동이다. 잘 아는 친구나 친지라도 자기 집에서 한 달 여간 공짜로 먹고 잔다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짜증 한번 낸 적이 없다. 그냥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가족으로 대한다. 부인이나 아들들에게 너무 오래 있어 미안하다 말 하니, 자주 있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며 신경 쓰지 말라 대답한다. 나뿐만 아니라 벌써 수십 명은 이렇게 들러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러 있다 돌아간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판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나를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다. 내일 당장 교통사고로 난 죽을 수도 있다. 그 때 넌 내 죽음을 슬퍼하며, 날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내 재산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날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부자이다. 너는 내 친구이고, 앞으로 나는 네가 날 깊이 생각해주고 내가 죽고 난 후 많이 슬퍼하고 날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렇게 대해주는 것이다. 적어도 내일 당장 내가 죽으면 넌 내 죽음에 슬퍼할 것이지 않느냐?”  

 

요즘 책들을 보면, 재테크다 뭐다 하며 부자 되는 방법들에 대해 아주 잘 나온다. 사실 나도 돈 한 푼 없이, 없는 살림에 아들래미 꿈 이뤄주겠다며 이렇게 유학까지 보내준 부모님 돈 타 쓰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고등학생 시절부터 골백번은 읽었는데도 이리 돈 욕심이 생기는걸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토니의 말이 떠오른다. 토니에게 삶의 재산이란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기억이라 했다. 학교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하면서, 아프리카 대부분 민족들이 다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오랫동안 기억되기 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인인 토니가 그런 민족들에게 영향을 받아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타 민족들은 끼어 들어가기 힘든 인도인 사회에서 토니가 다른 아프리카 전통 민족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기억을 재산 삼아 살아가고 있나 보다. 나 자신에게 한번 묻는다.

 

‘지금 당장 내가 죽으면 어느 누가 날 기억해줄까?’

 

얼핏 머릿속에 가족들과, 학창 시절 친했던 몇몇 친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게 다이다. 그나마도 그들이 날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해줄지도 잘 모르겠고, 좋은 기억으로 날 기억해줄지에 대해선 자신 없다. 동안 사고나 병으로 몇몇 젊은 친구들을 하늘로 보냈다. 꽤 친했던 녀석도 하나 병으로 세상을 떠나 보낸 적이 있다. 그 친구 이야기 좀 잠깐 하자면 참 바르고, 정도 많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친구를 보내면서도 몇 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무뎌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괜히 친구에게 미안해진다. 그 친구를 생각하노라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것도 것이지만,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파 지쳐 허여진 얼굴로 씩 웃으며,

 

“형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이지? 나 밥 한 끼 사주면서 좀 쉬어.”

 

참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웃었다. 

 

한번은 녀석이 내 기숙사 방에 와서는 그 좁은 침대에서 둘이 끼어 새우등으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밤새도록 콜록콜록거리며 힘들어 하는 녀석에게 미안했다. 불쑥 와서 잠 얻어 자는 주제에 자꾸 콜록거려 주인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차라리 녀석이 대 놓고 털썩 누워 나 몰라라 하고 줄창 기침 해댔다면 덜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주인이 자기 기침에 신경이라도 쓸까봐 아주 죽을힘을 다해 참고, 참다가 기침을 터트린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다음 날 아침에 지저분한 녀석의 구두를 닦아 주었다.

 

그 친구를 기억할 때면 난 아직도 웃는다. 아직 다른 사람들 보기엔 어리디 어리고, 세상 얼마 살아 보도 못한 풋내기이지만, 그 친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 있어 참 행운이었다. 그래서 웃는 그 친구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어쩌다 할 일 없는 날, 신발을 빨 때면 녀석 구두를 닦아주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토니 말대로라면 이 친구는 적어도 재산 하나는 남겨 두었다. 아니 이 친구의 많은 재산 중에 ‘내 기억’도 같이 끼어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전제를 가끔 잊고 살아가지 않나 싶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죽는다는 그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잊고 살아간다. 토니는 자기 죽고 나서를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재산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래서 생면부지 외국인도 제 집에 한 달이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런 손님 대접으로도 모자라 아주 가족 대접까지 한다. 

 

토니 친구 중 제리(Jerry) 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토니와 비슷한 연배로 큰 아들이 대학 3학년이라 한다. 그 친구가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하여 빚 저당으로 잡힌 집이 하루아침에 은행 손에 넘어가게 될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한다. 토니는 그런 제리를 위해 수천만원 돈을 은행에서 빌려, 대신 빚을 갚아 주었다 한다. 토니는 이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기억되기 위해 그랬다 이야기했다.

 

 

 

 

 


 

 

 

 

 

 

쪼콩의 남아공 이야기 세번째 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연재가 이십 몇일 후면 끝나겠는데요.ㅋㅋ

 

 

걍 후딱 다 해 뻐리고 놀죠 뭐^^

 

 

모기 누님 이제 좀 보기 편해졌죠?ㅋㅋ

 

 

제가 뭐 컴터 아는게 없어서...

 

 

그나마 이 정도까지 만드는데 이 것도 저것도 다 해봤습니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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