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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할아버지와 

프레쉴리 그라운드(Freshly Ground)

 

 

 

어떤 요일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일주일에 두 번 밤 12시 이후, 한 TV 채널에서는 거의 밤새도록 끊임없이 뮤직 비디오를 틀어준다. 미국 팝송 뮤직비디오를 많이 틀어주긴 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산 뮤직비디오도 미국 뮤직비디오 못지 않게 많이 틀어줬다. 유치하게 보이는 그 뮤직 비디오가 너무 재미있어, 거의 날밤을 새며 끝까지 다 보았다. 덕분에 다음 날 수업 내내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다는 ‘개다리춤’이다. 우리네 유치원 아이들에게 춤 한번 추어보라면, 십중팔구가 다리를 어깨만큼 벌리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무릎을 안쪽, 바깥쪽으로 떨어가며 손으로는 손뼉 한번에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몇 번 쓸어 올리는 모양으로 영락없이 개다리춤을 춘다. 음악, 오락 프로그램을 틀면 가장 많이 보는 춤이 바로 개다리춤이다. 아니 전부다 개다리춤이다. 브레이크 댄스를 해도 개다리춤을 기본으로 하여 몸을 뒤집고 꺾는다. 처음에는 개다리춤만 나왔다 하면 채널을 돌렸다. 그 춤 모양이 참 기괴하면서도, 어찌 보면 전혀 성의 없이 장난스럽게만 보여 보기 싫었다. 그러나 개다리춤을 보면 볼수록 그 매력에 빠져 나중에는 일부러 찾아볼 정도였다. 밤새 나오는 뮤직비디오도 온통 이 기괴하고 성의 없는, 그리고 장난스런 그러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기는 개다리춤으로 가득 찼다.

 

그 날도 그렇게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벽에 기대 누워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경쾌하게 흘러 나오는 음악 하나가 새로웠다. 뭐라 꼬집을 순 없지만 무엇인가 다른 음악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가만가만 귀를 기울여 들으니, 시원 시원한 여자 보컬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특이한 드럼 비트에, 지금까지 듣던 음악과는 너무도 다른 기타 소리, 거기에 중간중간 맛깔 나게 들어 오는 전자 바이올린, 플롯 모든 것이 새롭다. 악기가 어쩌고 저쩌고 따지기 전에 음악이 그저 듣기 너무 편하고 좋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흥겹다. 벽에 가만 기대 누워있다가, 어깨춤이 나 견딜 수가 없어 결국에는 일어난다. 머리 속에서는 고향이 떠오른다. 어릴 적, 소 꼴 먹이러 근처 물가 풀밭으로 몰고가, 한 쪽에 소 매놓고는 사방팔방으로 방아깨비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다. 왜 이 기억이 떠오르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어쩌다 집 생각이 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하루 종일 쳐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이 음악과 함께 찾아 든 고향 생각은 푸른 초원이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나는 텔레비전 뮤직비디오를 보며, 나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나는 기뻐하며, 나는 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홀로 춤을 춘다. 노래가 멈추고, 뒤에 이어 나오는 다른 음악이야 어떻든 나는 그냥 자리에 눕는다. 머리 속에서 모기 앵앵거리는 것처럼 멜로디 하나가 계속 울린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시내로 나갔다. 밤새 앵앵거리던 귓가의 음악을 찾아 음악사로 향한다. 나서는 길에 여기저기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 리어커에 음반을 늘어놓고 파는 길거리 음악사(音樂社) - 꼭 우리네 리어커 음악사이다. 신기하게도 우리네 리어커에서 트로트를 주로 팔 듯, 이쪽 리어커에서도 주로 전통 가요를 취급한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이라면 우리네 거리 음악사의 가장 큰 고객이 버스 운전사이 듯, 이쪽 거리 음악사의 가장 큰 고객 역시 버스와 택시(봉고차) 운전사이다 - 에서 쏟아내는 음악이 시끄럽다. 거리 음악사들이 늘어선 곳을 지나며 속도를 늦춘다. 혹시나 밤 새도록 감동했던 그 음악이 섞여 있을까 해서다. 하지만 없다. 얼른 시내 중앙에 큰 음악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는 길 시내 한쪽 거리에는 작은 피아노 갖다 놓고 연주하는 흑인 할아버지가 하나 있다. 몇 달 전, 친구와 시내 구경 왔다가 발견하였다.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 또 자글자글하니 온통 손등을 덮은 주름들, 얼핏 보아도 세월이 느껴진다. 연주도 연주지만 그 주름진 손이 너무 아름다워 친구와 나는 한참이나 그 앞을 못 떠났다. 친구가 가 물으니 나이가 육십이 넘었고, 피아노 연주는 어린 시절 배워 30년 넘게 해왔단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그 자리서 몇 시간이고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돌아간다. 다른 거리 음악가들과는 달리 할아버지의 피아노 주위에는 어디에도 동전 바구니가 없다. 동전을 얻기 위해 벗어놓은 모자도 없다. 할아버지는 그냥 피아노를 칠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여유 있어 보이나 보다. 길거리에서는 음악 한다는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조금 모인다 싶은 자리면, 어디든 틀림없이 한쪽에 조그만 공간을 내고 자리를 잡는 게 이 친구들이다. 그런 그들은 대부분 음악보다는 앞에 놓인 바구니에 신경을 쓴다. 그들에게는 음악이 아니라 바구니가 목적인 셈이다. 한참 구성지게 놀다가도 바구니를 또는 모자를 들고 청중들 사이를 휘휘 돈다. 한바탕 시원하게 놀고 적선을 바라는 각설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니 각설이보다도 더 돈을 밝히는 치로 보였다. 적어도 각설이들은 돈 안주는 사람에게 욕설로 성질 부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녀석들과 달리 할아버지는 그저 관중의 박수가 그리워 나온단다. 그 동안 그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접었던 음악의 꿈을 늘그막에나마 이러게 펼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단다. 

 

시내에 들를 때면 언제나 그 앞에서 한참이나 연주를 구경하다 갈 길을 가곤 했다. 바쁜 날에도 되도록이면 그 앞으로 지나 흘러 나오는 피아노 소리라도 들으려 한다. 오늘도 저만치 할아버지가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기억나는 음 몇 소절로 음반 사러 가는 길인데, 행여 다른 음악과 섞여 음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낭패다. 할아버지에게 고개 짓으로 인사하고 지나가려니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이제 막 곡 하나 연주를 마친 모양이다. 만날 때 마다 찾아가 인사하고, 또 한참 옆에 있었더니 할아버지도 나를 알아본다.

 

“지금 많이 바빠요. 일보고 바로 올게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 끄덕거리며 이번에는 바깥으로 손짓한다. 어여 가란다. 

 

음악사에 도착했다. 점원을 붙들고 허밍으로 한두 소절 불러주니 단번에 씨디를 하나 들고 온다. 음 하나 가지고 음반을 찾으러 오는 이 동양인이 우습게 보였는지, 유명한 음악이라 금방 알아들었지, 아니었으면 어쨌을 거냐는 핀잔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뭐 그리 충고하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에 어제 뮤직비디오에서 노래 하던 그 여자 가수 사진이 있다. 제대로 잘 찾았다. 팀 이름이 프레쉴리 그라운드 (Freshly Ground)라는 7인조 혼성(混性)이자, 혼색(混色) - 다양한 피부색이 섞인 - 그룹이다. 그리고 어제 밤 날 그렇게 울렸던 노래는 ‘두비두(Doo Be Doo)’라는 곡이다. 어제 감동이 갑자기 또 밀려온다. 아무 때나 쓸데 없이 말이다.

 

프레쉴리 그라운드는 여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유명하지만 저 멀리 유럽에서 아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MTV 유럽 어워드(MTV Europe Award)를 수상했다니 인기도 인기지만 음악성도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음악에 대해 잘 안다면 이들의 음악을 음악에 초점에 맞춰 묘사하겠건만 아는 것이 없으니 이 좋은 음악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어 애석하다. 그저 듣기에 편하고 좋았다. 

 

프레쉴리 그라운드는 흑인 둘에 백인 다섯인 다인종 그룹임과 동시에 혼성 그룹이다. 다양한 인종이 사는 나라에 이렇게 피부색을 섞은 그룹이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의외로 이 나라에 흑백 다인종 밴드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저 아파르테이트 때문이려니 생각한다. 이제 피부색에 따른 분리 정책이 끝났다고는 하나 오랜 세월 서로 섞이지 못 하게 해놓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무시하는 입장이었으니 둘이 섞이는데 15년은 조금 짧아 보인다. 그러나 미국 팝 시장에서도 이런 다인종 밴드를 찾기 힘든 것을 보면, 이건 꼭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프레쉴리 그라운드의 멤버 구성은 그들의 음악처럼이나 신선하다. 이들의 구성은 많이 복잡하다. 마치 여러 민족이 산다 하여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라는 별명을 가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말이다. 두 명의 흑인 중 보컬을 맡은 여자는 코사(Khosa), 기타를 맡은 남자는 짐바브웨(Zimbabwe)출신이다. 나머지 백인 다섯 중 몇은 영국계, 또 몇은 네덜란드계, 또 짐바브웨에서 온 이도 있다. 

 

우리 눈에는 다 똑같아 보여도 흑인이 줄루네 코사네 코이산이네 하며 다른 것처럼, 여기 백인도 다 똑 같은 백인이 아니다. 네덜란드계 백인, 영국계 백인 등 백인에도 여러 민족이 있다. 과거 네덜란드 출신과 영국 출신, 두 백인 집단은 남아프리카를 서로 먹기 위해, 남아프리카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프레쉴리 그라운드 내에는 그 두 백인 집단의 후예들이 같이 어울려 있다. 남들 보기에 이상한 이 밴드는 처음에 그리 크게 환영 받지 못했다 한다. 이 민족, 저 민족 섞어 만들어진 밴드이니만큼 음악 성향도 많이 섞였기 때문이란다. 백인들이 듣기에 이들의 음악은 흑인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흑인이 듣기에 이 음악은 백인적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음악을 섞었다. 음뿐만 아니라 가사도 섞었다. 대부분 영어 가사를 쓰지만 중간중간 코사(Khosa)어도 있고, 아프리칸스어(Afrikaans)도 들린다. 대부분 화합, 평화, 사랑 등을 노래하여 어쩌면 이들이 담은 음악 메시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아니스트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바로 프레쉴리 그라운드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할아버지도 나처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는 백인들이 나와서 흑인들의 노래를 부르고 흑인들의 춤을 춘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인생의 대부분을 분리정책에 의해 눌려 살아왔다. 그는 어려서 한 백인 농장에서 일을 하였다. 농장 주인은 어린 할아버지를 예쁘게 여겨,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가르쳐 주었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농장에서 일하며 배우며 자랐다. 청년이 되자, 할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광산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동안 주인 아저씨가 얼마나 좋은 백인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백인들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고, 어쩌다 백인에게 말대꾸라도 했다가 화가 난 백인에게 죽음을 당해도 할아버지 동료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광산에 있는 동안 병에 걸려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죽어간 이들을 수도 없이 봤고, 다이너마이트에 팔을 잃고도 아무 보상도 못 받은 채 쫓겨나간 이들도 수도 없이 봤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백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광산생활은 목숨을 건 사투였다. 언제 어떻게 죽거나 불구가 될지 몰라 항상 겁이 났단다. 그에게 짧으나마 일상을 탈출할 수 있었던 곳이 교회였다. 흑인 전용 교회이긴 했지만, 백인 목사가 들어와 사역을 했고, 그래서 피아노 같은 악기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덕분에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었다. 

 

만델라 대통령 당선 후, 할아버지는 일부러 전에 백인 구역이었던 곳으로만 골라골라 걸었다. 할아버지에게 백인들은 무서운 존재였다. 아파르테이트가 끝난 후에도 할아버지는 한동안 백인들만 보면 움찔움찔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였다니 말이다.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피아노에 있어서 그랬다. 할아버지도 백인들처럼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도 하고, 그래서 관객들의 박수도 받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자 할아버지는 바로 피아노를 샀고,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바로 이렇게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치며 관객의 박수를 먹고 산다. 그에게 프레쉴리 그라운드는 대리만족이다. 백인의 음악을 흉내 내고자 아둥바둥 했던 자기였는데, 프레쉴리 그라운드에서는 백인들이 흑인 음악을 흉내 내느라 귀여움을 떤다. 흑인처럼 개다리춤도 추고, 드럼 비트와 멜로디 등 백인들이 흑인들을 흉내 낸다. 이 음악을 처음 들으며 할아버지는 진짜 백인들과 이제는 평등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한참을 이야기 하느라 오늘은 할아버지가 별로 피아노를 치지 못 했다. 좀 쉬었으니 한 곡 해볼까 하는데 할아버지 아들이 모시러 온다. 할아버지와 아들은 차에 피아노를 싣고 떠났다.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두비두(Doo be Doo) 연주해달라고 졸라봐야겠다.

 

 

 

 

 


 

 

 

 

갑작스레 상가에 다녀올 일이 있어 며칠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