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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토니의 큰 아들 리납이 퇴원했다. 무릎 수술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아무 문제없다 한다. 기분이 좋아진 토니는 저녁 때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외식을 나갔다. 같이 가자는 말에 가족들끼리 맛있게 먹고 오라 대답했건만, 토니는 한사코 차에 태워 끌고 나갔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가족 식사에 동참했다.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 갔다. 메뉴판을 보고 우물쭈물 하고 있던 나를 위해 라쉬르가 달걀 요리로 주문을 대신 해 주었다. 이제 좀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암만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 메뉴판은 아직도 골칫거리다. 그래서 지금도 식당에 갈 때면 같이 간 친구에게 주문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매번 똑같은 음식만 주문한다.

 

리납이 지겨웠던 병원 생활에 대해 한창 불평하고 있을 즈음, 웨이터가 작은 유리 대접에 레몬을 띄운 깨끗한 물을 가지고 와 각자의 앞에 놓아준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차라 얼른 대접을 들어 마셨다. 물맛은 별로였다. 날은 더운데 물은 미지근했고, 거기에 레몬까지 띄워놓아, 싱거운 레몬 향과 맛이 오히려 물맛을 버리는 듯싶었다. 

 

‘시원한 물은 그만두고라도, 레몬을 띄우긴 왜 띄워? 물맛 버리게.’

 

겨우 반도 못 마시고 물 대접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다. 날 보는 토니의 눈이 왠지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둘째 아들 리반은 아주 배를 잡고 뒹굴며 웃는다. 웨이터도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토니가 얼른 웨이터에게 얼음물 한잔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핑거볼(finger bowl)이라는 손 씻으라 내준 물이다. 손 씻으라고 내 준 물을 마셨다. 이렇게 창피할 수가. 예전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핑거볼을 들이킨 한국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 쥐며 깔깔댔던 생각이 났다. 어떻게 마실 물인지 손 씻을 물인지 하나 구별 못 하냐 비웃으며 말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핑거볼은 손 씻는 물이라 생각하기 힘들게 생겼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 대접에 레몬까지 떠 있어, 이건 보기에도 시원하고 참 맛나게 생긴 물이다. 평소 식당에 들어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 성의가 고마워서 한잔 들이키지 않고는 못 견디게 생겨 먹었으니, 어찌 아니 마시지 않고 배겨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나중에 나온 얼음물이 훨씬 볼품없고,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괜히 유리 대접과 레몬을 탓 하며, ‘한국 식당에서는 식사가 나오기 전에 항상 마실 물을 가져다 준다, 난 그래서 착각을 했다.’변명을 해 댔지만 이미 친구들의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토니가 덕분에 아주 즐겁게 식사 했다며 고맙단다.

 

 

 


 

 

 

 

<쪼콩>

 

오늘은 영 기분 거시기 하신 분들 웃으라고 적어 봤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경험해보신 분들 계실지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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