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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더반 시내에 나갔다. 동안 위험하다는 소리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 집 바로 앞, 슈퍼마켓에 갈 때조차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 한참을 망설인 후에나 나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제법 간이 부었나 보다. 동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 땅까지 와서 하루하루, 종일 방 안에만 쳐 박혀 있는 건 젊음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하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하여 홍길동이라고 불렸건만, 요 한 달 동안 홍길동은커녕 방바닥 귀신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전날 저녁 술집에서, 토니와 다른 친구들이 시내와 집 위치 약도까지 그려줘 가며, 시내로 나가는 방법과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비상시에 연락하라며 적어 받은 휴대 전화 번호만 해도 족히 열 장은 되는 듯싶었다. 그렇게 마음 써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샌드위치와 차를 들고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버스 시간은 기사 마음대로 라니 조급해 말고 기다리라는 친구들의 말에, 내 살 던 시골 고향은 하루에 버스 세 대 들어오던 동네였다고 대답하였다. 한국에 그런 곳이 어디 있냐며 안 믿는 눈치였다. 적어도 이 동넨 내 고향 동네보다 버스는 자주 오겠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부부로 보이는 백인들이 다가와 어디 가냐 묻는다. 더반 시내에 가는 길이라니 저 쪽 맞은편에서 타는 거란다. 하마터면 시내는 고사하고 생판 모르는 시골 땅에서 헤맬 뻔 했다. 버스가 왔다. 이미 버스 요금을 알고는 있었지만 버스 차장에게 말도 걸어볼 겸, 요금을 물었다. 이곳은 아직 몇몇 시내 버스에 예전 우리나라에 있던 버스 차장이 있어 요금을 받는다. 그들의 모습은 기억 속에 있는 과거 한국 버스 차장들의 그것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버스 출발을 알릴 때면 버스 옆면을 두어 번 탕탕 치고,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쯤이면 미리 문을 열고 버스에 잠시 매달려 있다가 솜씨 좋게 뛰어내려 손님을 맞이한다. 문득 교련복 찢어 만든 동전 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고향 동네의 버스 차장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를 반갑게 맞아준 이 차장 알고 있던 가격보다 약간 높게 버스비를 부른다. 잠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따져볼까 했지만, 몇 십원 차이 안나 그냥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버스는 대체 언제 적 것인지, 문도 제대로 닫히지도 않고, 의자며 창문이며 제대로 붙어있는 게 없다. 어떤 의자는 쿠션이 찢어져 그 안에 철사 쪼가리가 삐죽이 나와 있어, 주의하지 않고 앉았다간 십중팔구 저에 찔릴 듯이 보였다. 매캐한 자동차 기름 냄새와 기사 양반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섞여, 순간 구토가 쏠렸다. 게다가 버스 안에 있던 열 명 남짓한 승객들 중에 반 수 정도가 담배 물고서는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냄새가 좀 고약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흡연을 하는 지라 이는 마치 지상 천국처럼 보였다. 얼른 얼씨구나 하며 담배 한대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랬더니 버스 차장이 다가와 어디서 담배를 피냐고 시비다. 

 

“지금 나만 담배 펴요? 저기 저 사람들은 뭔데요?”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이 차장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자기도 담배 한대 주면 괜찮다 한다.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 한대 건네니, 이번에는 로또 종이를 들고 와 번호 다섯 개만 찍어 달란다. 왜 이런 부탁 하느냐 물으니, 동양인들은 행운을 가지고 다녀서 잘 맞을 것 같아 그런다고 그런다. 

 

‘동양인들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너희들 주술사에게 찾아가보지 그래?’

 

 아무 숫자가 대충 불러주고 바깥 풍경에 집중했다.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 역시 겉보기에 이 버스만큼이나 낡을 대로 낡아,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정신 없이 흔들어댔다. 

 

뭐니 뭐니 해도 버스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 뭐하노라 쳐다보면 참말로 재밌다. 매번 신기한, 색다른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과 똑같은 그 모양들은 나름대로 전에 보아왔던 모양들과 틀려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 하나가 자꾸 눈앞에 거슬린다. 차장이다. 이젠 아주 내 옆에 앉았다. 버스 요금 올려 받을 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치였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은 짓만 골라한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그렇잖아도 꼬불꼬불한 곱슬머리가 더 이상 엉킬레야 엉킬 수 없을 정도로 엉키고 뭉개져 있었다. 웃을 때마다 드러내는 앞니는 대문짝만큼이나 벌어졌고 거기에 담배를 얼마나 피워댔는지 치석으로 누렇게 덮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때 묻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요새말로 생긴 것부터가 재수 없었다. 요금 올려 받기에, 담배 가지고 시비더니 이젠 무얼 가지고 시비일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 물어올 말은 뻔하다. 어디서 왔느냐, 성룡이나 이소룡 아느냐. 당연히 저런 질문들이 왔고, 난 대충 성의 없게 대답하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제발 그만 좀 귀찮게 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으나 짧은 내 영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욕도 좀 배워야 한다 하던데, 역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 차장 제법 심각한 눈빛으로 에이즈(AIDS)에 대해 아느냐 묻는다. ‘예스’라 대답하자 이 친구는 한국의 에이즈에 대해 묻는다. 소수의 환자들만이 있어서 전혀 관심 없다고 대답하니, 이 친구가 노발대발하며 역정이다. 어떻게 그런 문제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며 말이다. 

 

 통계만으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의 20% 정도가 에이즈 또는 HIV 감염자라고 한다. TV 공익 광고에서는 끊임없이 에이즈 예방에 대해 나오고, 도시 곳곳에 에이즈 보건소가 세워져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에게 에이즈는 생활이다.

 

자세한 통계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핏 듣기에 한국에도 약 4000여 명의 에이즈 감염자가 있다고 한다. 이 수치가 에이즈 환자만인지 HIV 감염자도 포함한 것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주위 나라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이즈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인지, 한국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HIV와 에이즈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난 에이즈에 대해 무지했었다. 미국 전 프로농구 스타 매직 존슨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뉴스를 보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하며 의아해 왔다. 그는 에이즈가 아닌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관리만 잘하면 꽤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난 HIV와 에이즈에 무지하였다. 차장이 한국에는 에이즈가 없냐고 묻는다. 있다는 대답에 그들은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 대답할 말이 없다.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버스는 시내에 도착하였다. 그 시내버스 차장이 혹시 에이즈 환자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에이즈에 그리 무관심하냐며 역정을 내는 모습은 마치 안타까운 절규처럼 보였다. 국민의 20% 정도가 HIV 감염자 또는 에이즈 환자라니, 이미 만난 사람들 중에도 상당수는 그러할 것이다. 이 버스 차장도 어쩌면 그 20%의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에 에이즈에 관심 없다는 내 대답은 마치 자기 죽음에 전혀 관심 없다는 말처럼 들려 가슴 아팠고, 그래서 내게 노발대발하며 역정을 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가 에이즈 환자였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에이즈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픈 일이다. 아프리카 에이즈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 보다, 말로 듣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 생각해 보라. 통계에서 발표하는 숫자들일랑 일단은 잊고, 길을 가다 만나는 수많은 사람 다섯 중 하나는 HIV 보균자 또는 에이즈 환자라고 생각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길에서 만난 다섯 중 하나가 죽을병에 걸려 있다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한가.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측은하다. 이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해산물 시장을 둘러보며 지금껏 본적 없었던 생선들을 보다 슬펐다. 그들은 눈꺼풀이 없다. 그래서 죽었지만 눈을 덩그러니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노려보는 눈빛이 ‘나는 이미 죽었다. 그대가 내 죽음에 슬퍼해 주길 바란다.’하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이는 마치 그 시내버스 차장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눈만 떴을 뿐 자기는 이미 죽어있는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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