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에 기부 천사라는 이름을 달고 상당액을 기부하는 여러 연예인들을 종종 본다. 연예인 뿐만 아니라 운동 선수나 다른 유명한 사람들도 기부의 손길을 아끼지 않는다. 평생 떡볶이를 팔아 모든 돈을 기부하는 할머니도 있고, 길거리 폐지를 팔아 어렵게 모은 돈을 전부 기부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남을 돕는데 유명하고 안 유명하고가 어디 있고, 얼마나 했나가 또 무어 중요하겠는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 우리네 주위 평범한 사람들도 거액은 아니라도 기부를 통해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을 주위에 보낸다. 그 중 우리네 평범한 이들이 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부 중 하나는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하는 기부이다. 차가운 지하철 역사 바닥에 엎드려 두 손을 모아 벌린 이들, 지하철 인파를 교회 찬송가나 하모니카 음악으로 가르며 걷는 이들, 그들의 손과 바구니는 몇 푼이나마 언제나 차 있다.
더반도 거리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아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보통 그들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같은 곳에서 서성이다가, 차가 신호에 걸리면 대번에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로 바구니를 들고 들어선다. 그리고 차 창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며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한푼 달라는 시늉을 한다. 아주 애절한 표정은 기본이다. 처음 몇 날 동안에는 그런 이들을 볼 때 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혹시 동전이 있나 확인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도 아무것도 없을 때면 항상 미안했다. 아무래도 주머니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기대에 차, 차 유리에 바짝 서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받으니 많이 실망스러웠었을 것이다. 실망스러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보았던 많은 이들 중에 한 꼬마 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꼬마는 얼굴에 하얀 화장으로 분장 하고, 동전 바구니를 앞에 놓고 한 동작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바구니에 동전이 떨어지면 그 친구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 잘 추는 춤은 아니었지만 어른의 춤을 흉내 내는 아이가 귀여웠다. 그는 동전 액수에 맞춰 많이 주면 오래, 적게 주면 짧게 춤을 추었다. 그렇게 바구니에 던져진 동전만큼 춤을 추다, 액수가 다 하면 꼬마는 마지막 동작 또 그대로 멈춰 선다. 그리고 다음 동전을 기다린다. 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 탓인지 그 아이의 동전 바구니는 항상 넘쳐났다. 사람들은 그런 꼬마의 춤이 귀여워서라도 동전 한 냥이라도 더 던져주려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마치 동전을 넣으면 춤추는 댄스 머신 같다 하여 사람들은 그 꼬마를 ‘댄스 머신’ 이라고 불렀다. 그 후 더반에는 수많은 꼬마 댄스 머신이 여기저기 생겼다. 다른 꼬마들이 그 아이를 흉내 내 동전 바구니 앞에서 춤을 추었던 것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앉아 기다리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해가 뉘엿뉘엿한 오후 대여섯 시쯤이면 일터에 나갔던 이들이 거의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야근이나 당직이 없다니, 매일이 야근인 우리네 직장인들로서는 부럽기도 하다. 아이들은 직장인들이 이제 막 퇴근하는 시간대를 노린다.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또는 이제 막 거실에 앉아 식구들과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그 시간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대문 앞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제법 큰 아이부터 아주 작은 아이까지 팀을 이뤄 다니는 것이 꼭 가족처럼 보인다. 그들은 온 동네를 집집마다 하나 빼놓지 않고 죄다 들른다. 이 친구들의 노랫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밀려온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아기 천사들의 목소리였다. 지친 하루를 달래주는 마치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의 편안하면서도 맑은 노래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유명하다던 빈소년 합창단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들의 그렇게 합창을 끝내고는 옆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집은 그들에게 동전 몇 개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들의 노래를 공짜로 감상만 한다.
언제 한번 친구와 시내에 먹거리를 사러 갔다가 꼬마 댄스 머신을 보았다. 그렇잖아도 한번쯤은 동전을 던져주고 그 친구들 춤 구경을 하고 싶었던 차였다. 잘 되었다 싶어 얼른 동전 하나 바구니에 던져 주었다. 꼬마 댄스 머신은 내가 던진 동전 액수만큼 춤을 추다 멈췄다. 좋은 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는데 같이 갔던 친구가 내 어깨를 꼬집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 경고한다.
이 곳 사람들은 거리에 놓인 바구니들에 인색하다. 차창 밖에서 아무리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한푼 줍쇼’를 해도 대부분이 외면한다. 토니는 더운 날 창문을 활짝 열고 다니다가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아예 창문을 꽁꽁 닫는다.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주위에 망을 보는 도둑, 강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걸인들 주위에는 대부분 그들을 숨어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 눈은 걸인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이들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부자처럼 보이는 이들을 발견하면 뒤쫓아가 습격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길거리에서 온정을 베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괜히 동전 몇 푼 잘못 던져줬다가 도둑, 강도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댄스 머신에게 던져준 한 푼이 오히려 나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약간은 아찔했다.
그러나 친구가 내 어깨를 꼬집으며 나무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쓰는 용도가 문제였다. 많은 아이들이 길에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마리화나를 자주 사서 핀다는 것이 친구의 설명이었다. 학교 친구들 중에 마리화나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이 있다. 가격도 싸고, 슈퍼마켓에서만 안 팔다 뿐이지 구하기도 쉽다. 전에 토니의 마을에 살 때도 어렵지 않게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마리화나가 합법인 많은 국가들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불법이다. 어떤 이는 마리화나가 중독성이 없어서 괜찮단다, 또 어떤 이는 환각성도 없다 한다. 그러나 보아온 바로 마리화나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환각성과 중독성이 있다. 담배가 더 해로운지, 마리화나가 더 해로운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마리화나는 담배처럼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해로울 건 자명하다.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마리화나는 분명한 불법이다.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마리화나를 사고 파는 것은 슈퍼마켓에서 담배 사고 파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불법이기 때문에 마리화나는 은밀한 창구를 통해 구입된다. 전에 토니네 마을에 있을 때, 우연히 마리화나 구입 현장을 본적이 있다. 가까운 사이 중에 오십 먹은 아저씨 하나가 마리화나 애연가였다. 어느 날 술집에서 같이 술 한잔 하고 있는데, 마리화나가 떨어졌다며 사러 간단다. 어디에서 사냐 물으니 씩 웃으며 자기 차에 나를 태우고 나섰다. 술집에서 차로 십분 정도 떨어진 일반 가정집으로 갔다. 그가 창문을 몇 번 톡톡 치니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하나가 창문을 빠끔 열어 내다본다. 고객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지만 옆에 앉아 있던 나를 보더니 물건을 안 판다며 창문을 닫는다. 아무래도 법이 금하는 물건을 공급하다 보니 낯선 얼굴을 잔뜩 경계한다. 오십 줄 친구가 창문을 두드려 다시 열게 한 뒤, 나에 대해 설명을 하며 사정을 한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퉁명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건네자 그는 잠시 사라졌다가 창문으로 물건을 건넨다. 남자는 마리화나 중간 공급자로 갱단이 공급하는 마리화나를 처리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마리화나를 이렇게 주위에 팔아 돈을 번다. 정도만 조금 덜 하다 뿐이지 영화에서 보던 마약 거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문을 두드리고, 낯선 사람을 피하고, 혹시나 나올지 모르는 단속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이제 열살 조금 넘은 아이들이 저리하고 다닌다면 어찌 아니 암울하겠는가? 아이들 주변에도 마리화나를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토니네 시골 마을과 달리 규모가 큰 도시다 보니 알게 모르게 더 넓게, 더 많이 퍼져있을 것이다. 마리화나 장사치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상관없다. 그저 주머니만 채우면 된다. 아이들은 또 다루기가 쉬우니 어쩌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떠 넘겨버리거나, 키워서 나중에 자기 일을 하는데 써 먹기도 한다. 그 무섭다는 갱단이니 어쩌다 발 한번 잘못 디뎠다가는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애들이 뭘 알아서 그런 것을 찾아 피고, 또 그렇게 깊이 얽히고 설키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낮에 거리를 다니다 보면 길가 나무 밑에 누워 낮잠 자는 청년들을 많이 본다. 이건 많은 정도가 아니다. 어디를 가나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꼭 한 둘은 있다. 그 사람들 자세한 사정을 몰라 그렇게 길바닥에 누워 자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틀리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아이들이 길바닥에 누워 자는 남자들 틈에 끼어 같이 있다. 생긴 것으로 봐서 많이 쳐줘야 열 대여섯 살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아이들이 학교가 아니라 길바닥에 누워 쿨쿨 낮잠을 즐긴다. 이 아이들이 바로 거리에서 춤을 추던 댄스 머신이고, 천사 같은 목소리로 집집마다 대문 앞에서 합창하던 소년들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저녁 때 마리화나를 찾아 피고 아침 나절까지 길바닥에 누워 잔다.
이런 아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 아이들에게 돈 안주기 캠페인이 있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불쌍해 보여 빵으로 배나 채우라는 뜻으로 던져주는 동전이었지만, 이 철없는 것들은 그걸로 학교 안 갈 궁리만 한다. 학교만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마리화나니 담배니, 본드까지 온갖 못된 짓을 다 한다. 정도가 심해지면 거기서 점점 마리화나꾼들 사이에 얽혀, 빠져 나오지도 못 하게 된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니 아이들에게 돈 안주기 캠페인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을 학교로 돌려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범죄의 소굴로 밀어 넣지는 말자는 취지였단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전쟁이 나면 여자와 아이들만 불쌍해진다. 그런데 여기는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아이들이 저리 안쓰럽게 있는지 모르겠다. 제법 맛나게 잘 하는 인도식 식당이 있어 가노라면 그 길가에 언제나 뚱뚱한 아주머니 하나가 아예 앞에 깡통 하나 놓고 자리 펴 앉아있다. 그 아주머니는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이들과 있으면 아무래도 애들 불쌍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던져주는 게 사람심리니 노리긴 잘 노렸다. 두 아이 중 하나는 이제 네댓 살 정도로 밖에 안되어 보이지만, 큰 애는 학교 가야 할 나이가 지난 듯싶었다. 의심 많은 한 인도인 친구는 저 아이들이 진짜 저 여자 아이들이 아닐 수 도 있다 한다. 어디 고아원이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저렇게 동냥하는데 써먹고 다시 내다 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매일매일 고아원 같은 곳에서 대여해오는 아이들을 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친구가 이런 예상을 하는 것을 보면 꼭 없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시내에 나설 때마다 댄스 머신 꼬맹이들이 보인다. 저쪽 골목 모퉁이에 한 댄스 머신이 서 꼼짝도 않고 손님을 기다린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댄스 머신이 몸을 부들부들 떤다. 동전을 던져주는 이가 없다. 바구니에 동전이 몇 개있긴 하다. 따가운 햇살에 흐르는 땀이 얼굴에 하얀 분칠을 씻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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