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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테이트 정부는 1974년, 정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모든 흑인 학교에서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 (Afrikaans)를 배우도록 정했다. 이에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Soweto)라는 지역 흑인 학교 학생들이 일어났다. 1976년 6월 16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공용어만도 11개 일정도로, 많은 민족이 각자 자기들의 언어를 쓰며 배우며 산다. 각 민족에게 있어 언어는 자기들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백인에 쫓겨 좁디 좁은 곳에 얹히고 끼어 사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꺾어 버리고 백인들의 언어를 의무적으로 배우란다. 화가 난 학생들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소웨토 항쟁(Soweto riot)[1]이다. 소웨토의 거리는 대번에 학생들로 꽉 차 그 수만도 수천이었다. 백인 정부는 어린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진압했다. 500명이 넘는 학생이 죽었고 셀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이 다쳤다. 헥터 피터슨(Hector Pieterson)이라는 학생이 사망하는 장면은 전 세계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학생의 날(Youth day)’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끄와줄루 나탈(KwaZulu Natal)지방에서는 학생의 날에 아주 특별한 행사가 하나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냥 장거리 마라톤이 아닌, 초장거리 마라톤 경주다. 더반(Durban)에서 피터마르츠버그(Pitermartzburg)까지 뛰는 거리만도 무려 89.3Km, 거의 90Km이다. 100Km라 우겨도 그리 큰 허풍이 아니다. 보통 마라톤 42.195Km의 두 배 이상이다. 콤라디스 마라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큰, 그리고 가장 긴 마라톤 경주란다. 처음 콤라디스 마라톤 대회가 열린 해가 1921년 5월 24일이라니 오래되기 정말 오래되었다. 콤라디스 마라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영국령이던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어 매년 진행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공화국을 선포한 후, 5월 31일 공화국의 날(Republic day)에 마라톤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지금 1994년 흑인 정권이 탄생한 후에는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 중 하나인 학생의 날을 잡아 콤라디스 마라톤을 연다. 애초에 영국령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열린 대회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기념한다. 콤라디스 마라톤이 곧 남아프리카의 역사인 듯하다. 큼직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날짜가 바뀌었으니 말이다.

 

친구들이 하도 콤라디스 마라톤 노래를 하길래 어떤 마라톤인지 구경이나 하자며 나섰다. 새벽 다섯 시 반에 마라톤 시작 총성이 울린다니 아침 아주 일찍부터 일어나 나섰다. 콤라디스 마라톤은 더반과 피터마르츠버그 사이 90Km를 한해는 더반에서 피터마르츠버그로, 다음해에는 반대로 피터마르츠버그에서 더반을 향해 뛴다. 피터마르츠버그가 더반보다 고도가 훨씬 높아 더반을 출발해 피터마르츠버그를 향해 위로 올라 뛰는 것을 업런(up run), 반대쪽을 내려온다 하여 다운런(down run)이라 한다. 올해는 더반에서 출발한다. 업런이다. 한마디로 90Km짜리 오르막길이다. 말이 90Km지 저 거리 오르막을 대체 누가 뛴다냐 했다만,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이 너무 빽빽해 몇 명이 거기 서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조차 없다. 남자고, 여자고, 아이에,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거기다 어떤 장애인은 휠체어로 도전하겠다며 앉아 출발을 기다린다. 이건 살인적인 거리다. 그냥 걷기만 해도 어쩌면 목숨을 잃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목숨 걸고 뛴다는 말이 콤라디스 마라톤 참가자들을 두고 한 말이면 딱 맞을 게다. 실제로 경기 중이나 경기를 마친 후 목숨을 잃는 선수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출발 장소는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번호표를 붙인 선수도 선수지만 구경꾼들도 엄청나다. 

 

새벽 다섯 시 반, 아직 해가 뜨려면 좀 남았다. 그러나 주변은 조명으로 이미 대낮이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출발선 가장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나갔지만 저 뒤쪽에는 아직도 제자리서 뛰는 시늉뿐이다. 시작 신호 후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뒤쪽 사람들은 제자리 뛰기만 하다, 겨우 출발한다. 마지막 사람까지 출발하는 모습을 보니 벌써 시간이 여섯 시가 다되어 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인 아주머니가 TV로 마라톤 시청 중이다. 구경은 잘 했냐는 말에 같이 갔으면 좋았을 뻔 했다며 형식적 대답을 한다. 아침을 들고 TV앞에 앉았다가 11,000명이 마라톤에 참여했다는 보도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처음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겨우 몇 십명 참여하려니 생각했다. 규모가 크다는 말을 듣고 몇 백명 정도로 조금 크게 생각했다가 아침에 현장에 나가 직접 보고도 한 천명 정도로만 짐작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11,000명 선수들은 피터마르츠버그 시청 앞에 오후 다섯 시 반까지 가야 한다. 12시간 내에 90Km를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얼추 계산해도 시간당 7.5Km를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내내 마라톤 화면만 담는다. 쉬는 날이라 길래 눈요기할만한 특집 프로그램이라도 바랬건만, 다른 채널을 볼 수가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마라톤만 내내 틀어놓고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있다.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방송은 그저 그들의 뛰는 모습을 약간의 해설과 함께 방영하고 있을 뿐이다. 11시가 조금 넘자 카메라는 결승점 쪽으로 넘어간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가 나왔다. 다섯 시간 반 정도 되는 기록이다. 셈을 해보니 대충 일반 마라톤 우승자의 속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거리도 두 배가 넘고, 무지막지한 오르막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길이다. 인간 승리, 인내의 승리 뭐 이런 온갖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이 우승자가 어째 내 눈에는 인간 같지 않은 지독한 독종으로 밖에 안 보인다. 여자 독종은 남자 독종이 결승선을 통과한지 30분 후쯤에 도착했다. 하나, 둘 독종들이 가뿐 숨을 몰아치며 결승선을 통과해 쓰러졌다. 대부분은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한단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나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이들을 지켜봤다. 

 

그 때 갑자기 한 여자가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결승선을 몇 십 미터 남겨두고 털썩 쓰러져 버린다. 유난히 팔, 다리가 얇은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였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게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모양이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려 팔을 땅에 짚었으나 버티고 있을 힘이 없다. 겨우 배를 바닥에서 떼, 무릎을 꿇어 버티지만 양팔과 다리는 안팎으로 계속 떨린다. 마치 이제 막 태어난 염소 마냥 팔다리를 파닥파닥 떤다. 그리고는 다시 쓰러진다. 여자 눈의 초점은 이미 풀렸다. 카메라 넘어 보이는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저 발악하고 있는 것뿐이다. 더 이상 뛸 수 없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아쉽지만 그 여자는 결승 몇 십 미터를 남겨두고 끝내야 한다. 기적이 없는 이상 말이다. 여자는 다시 한번 일어서려 애 쓰고 있었다. 왜 의료반들이 바로 뛰어들어가지 않는지 의아스러웠다. 옆에 주인 아주머니도 안타까운 마음에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냐며 안달복달이다. 

 

기적은 그 때 일어났다. 거기를 지나가던 남자들이 여자를 양쪽에서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여자는 이미 다리가 완전히 풀려있다. 부축을 받긴 했지만 제 다리로는 서 있을 수 없다. 부축을 해서라도 여자를 완주하게 하려던 남자들의 수고가 소용없게 되려는 순간 남자 둘이 더 들러붙어 여자의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그들은 여자를 들고 결승선을 향했다. 미친 사람들의 집합처럼 보이던, 1등한 사람이 독종으로 보이던 이 바보 같은 초장거리 마라톤에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결승선을 향해 달리던 이들은 제 발걸음만으로도 무거울 텐데, 네 남자와 한 여자를 향해 박수로 격려를, 어깨를 툭 치며 힘을 준다.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이들이 결승점을 통과했다. 기적이다. 결승점이 떠나도록 사람들이 환호했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는 이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 눈에도 눈물이 팽 하니 돈다. 독종으로 밖에 안 보이던 이들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자가 쓰러지던 모습과 일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여자를 들어올리던 모습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다시 보여준다. 

 

우리네가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경쟁이다. 오죽하면 요새 세상을 무한 경쟁 시대라고 하는가? 말 그대로 끝이 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어찌된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는 1등 한 명과 나머지뿐이다. 옆에 같이 달리고 있는 사람은 내가 이겨야 할 사람이다. 옆 사람이 넘어지면 그저 재수없게 엉켜 걸려 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살짝 피해 앞을 향해 또 죽어라 뛰어야 한다. 앞에 저만치 가는 이를 따라잡을 생각뿐이다. 뒤에 어느 누군가가 언제 자기 앞으로 치고 나갈까 하는 두려움은 항상 뒤통수에 무겁게 달려있다. 그런 이들에게 옆에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여유는 없다. 만약 이 콤라디스 마라톤에서 넘어진 여자가 우리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넘어졌다면 과연 저 여자를 들쳐 업을 자들이 과연 있었을까? 옆에서 부축해주려 제 걸음을 멈춘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그나마 넘어진 이를 그냥 살짝 피해가는 건 양반이다. 패배자라 손가락질에 침을 뱉는 자들도 있다. 어떤 이는 넘어진 이가 다시는 못 일어나게 자근자근 밟기까지 한다. 과학이다 산업화다 하며 요새 세상이 옛날에 비해 편하니 살기 좋아졌다 한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서로 먹고 먹히는 야생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모든 것을 결과로만 이야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12시간이 흐른 후, 콤라디스 마라톤 11,000명의 참가자 중 9,000명 정도가 완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갑작스레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완주한다. 9,000명이라는 숫자도 12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는 콤라디스 마라톤 규칙에 의한 완주이지, 12시간이 지나 제한시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뛰어 완주한 선수도 상당수다. 그래서인지 관중들은 12시간이 지났어도 한참 결승선을 떠나지 못한다. 방송 카메라도 거기서 그대로 기다린다. 하늘에 중계카메라를 돌리는 헬리콥터도 중간 중간 아직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열심히 왔다 갔다 한다.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와 손을 자랑스레 두 손을 불끈 하늘로 들어올린다. 이미 일곱, 여덟 시간 전에 1등이라는 환호를 받으며 통과한 영웅들보다도 그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그들에게 이 마라톤은 자기와 한 약속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달리고 말리라 하는 약속 앞에 12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완주 메달 하나 못 받는 것뿐이다. 걸어도 좋고 기어도 좋다. 그러니 쓰러졌던 그 여자도 한참이나 일어서려 버둥버둥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서는 시간 종료 후에도 끝까지 아직도 달리는 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한다. 결과로만 이야기 하는 이 시대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기록은 소용이 없다. 12시간이 지난 기록은 공식적으로 완주하지 못 한 것이 된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완주를 멈추지 않는 것은 남들이 만든 공식 결과가 아닌 자기가 만든 자기 의지의 목표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런 선수들을 보며 사실은 감동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때로 뜨거운 눈물이 흘리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1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들이야 말로 진정 영웅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세상이 마치 그것들에 모르는 척 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결과 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에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1]소웨토 항쟁(Soweto riot): 아프리칸스어 의무교육에 대한 흑인 학생들의 항쟁을 일컫는 말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항쟁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영어 단어 ‘riot’이다. ‘riot’은 폭동, 소요 등을 뜻하는 말로 ‘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학생들의 저항을 ‘riot’이라 해서는 안 된다. 몇몇 보고서에 학생들이 경찰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고 적혀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보고에 따르면 이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학생들은 그저 서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구호를 외치며 행진 하였던 것이다. 차라리 이를 진압하려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한 정부와 경찰들의 행동이 riot(폭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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